한국이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ISD에서 패소해 730억원을 물어내게 되면서, 론스타 등 남은 ISD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역삼동에 입주해 있던 론스타.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ISD에서 패소해 730억원을 물어내게 되면서, 론스타 등 남은 ISD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006년 서울 역삼동에 입주해 있던 론스타.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일렉) 인수·합병(M&A) 관련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한국 정부가 이란 다야니(Dayyani) 가문에 73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정이 확정됐다. 이는 한국 정부가 ISD에서 패소한 첫 사례로 남아있는 다른 ISD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1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20일, 다야니가(家) 대 대한민국 사건의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영국고등법원은 중재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야니 가문이 소유한 이란 가전회사 엔텍합은 지난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3차 매각 당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 다야니 가문은 싱가포르에 설립한 특수목적회사 D&A를 통해 채권단과 총 대금 5778억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후 다야니 가문이 총 필요자금 대비 1545억원이 부족한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하자, 채권단은 계약을 해지하고 다야니 가문이 선지급한 계약금 578억원을 몰취했다. 계약 해지의 책임이 다야니 가문 측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야니 가문은 지난 2015년 9월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을 근거로 2015년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를 제기했다. 이 소송을 맡은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계약금과 지연 이자를 더해 총 730억원을 다야니 가문에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판정을 재고해달라며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중재지인 영국고등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판결을 확정했다. 정부는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 중 한 곳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국가기관이 아니며, 따라서 캠코의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된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다야니 가문은 싱가포르 법인인 D&A에 투자했을 뿐 한국에 투자한 것이 아니며,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상 투자자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사유로 제기했으나 결국 중재법원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번 사례는 한국이 ISD에서 패소한 최초의 사례다. 문제는 이번 사건보다 훨씬 더 소송 금액 규모가 큰 ISD가 남아있다는 것. 특히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지난 2012년 한-벨기에 FTA를 근거로 한국 정부에 제기한 ISD는 소송 금액만 5조원대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절차를 부당하게 지연했으며, 그 과정에서 고가로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부당하게 세금을 부과받는 등 손해를 입었다는 입장이다.

특히 론스타 ISD는 다야니 ISD와 마찬가지로 공정·공평 대우(F&ET) 위반이 쟁점으로 걸려있다. 다야니 가문은 캠코의 계약금 몰취가, 론스타는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매각 지연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공정·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공평 대우란 투자 유치국의 자의적·차별적·불공정한 대우를 막음으로써 외국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내용과 기준이 불분명해 투자자에 편향된 ‘만능조항’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여선 교수는 2014년 기고한 논문에서 “피해 발생이 존재하지만 적합한 원용조항이 없는 경우 예외 없이 F&ET 위반을 청구원인으로 한다”며 “F&ET 개념이 모호하고 그 적용 범위가 무제한 확장되고 있어 신청인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ISD중재에서 위반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공익목적 규제보다는 국제투자협정(IIA)의 목적인 투자자/투자 보호에 중점을 두어 판정하고 있다. 확장되고 모호한 개념인 F&ET 위반을 청구원인으로 하는 것은 신청인 입장에서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청구인의 투자자(당사자) 적격성 여부도 론스타와 다야니 ISD의 공통된 중요 쟁점 중 하나다. 정부는 다야니 ISD에서 다야니 가문이 싱가포르 법인에 투자한 것이지 한국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며 당사자 적격성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론스타 ISD에서도 정부는 벨기에 국적의 론스타펀드 산하 법인인 LSF-KEB Holdings SCA는 단지 페이퍼 컴퍼니로서 법인으로서의 실체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중재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는 당사자 적격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어떤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5월 국제상공회의소(ICC)가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제기한 1조6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상 책임이 없다”며 하나금융의 손을 들어준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ICC는 “하나금융이 정부에 매각 승인을 받으려는 노력을 충분하 하지 않았다”는 론스타 측 주장을 기각하고,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라 신속하게 매각 승인 지연이 불가피했다”는 하나금융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같은 ICC의 결론이 ISD에 영향을 미친다면, 금융당국이 의도적으로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켰다는 론스타의 핵심 주장이 무너질 수 있다.

한편 금융위는 “이번 다야니 ISD와 관련해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산업부, 금융위 등 긴급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하여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며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판결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