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인간을 부리는 긱 경제
시스템이 인간을 부리는 긱 경제
  • 임순만(언론인)
  • 승인 2019.12.27 09: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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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탄생한 1500년부터 영국 산업혁명이 시작된 1820년대 사이 1인당 소득 성장률은 0.14%였다. 산업혁명 기간인 1820년에서 1870년까지 50년 동안에 개인 소득 성장률은 7배 이상이 오른 1%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방직공 등 숙련노동자들이 임금이 싼 비숙련노동자들이 조작하는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게 됐고, 노동자들은 주당 100시간까지 일을 해야 했다. 아동들도 하루에 12 시간 이상을 일 해야 했다. 밀집된 주거환경 때문에 도시노동자들은 한 방에 15~20명이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초연결, 초지식의 시대가 된 2000년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인간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의 변화는 워낙 극심하게 진행 중이어서 그 전모를 아직 다 파악하기는 이르지만, 분명한 것은 일자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정규직이던 평생직장은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택시, 쇼핑도우미, 가사도우미, 요리사, 간병인 등 모바일로 호출할 수 있는 많은 분야에서 임시직이 도입되더니 이제는 산업현장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임시직이 확산되고 있다. 

임시직 노동에 의해 경제가 주도되는 ‘긱 경제’(gig economy)라는 말은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니다. 원래 ‘긱’이란 용어는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즉석 연주자를 섭외해 짧은 시간에 공연에 투입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긱 경제라는 말은 요즘 기업과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1인 자영업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일하는 유연한 임시직 경제 방식이라는 것이다. 재능이나 시간 등이 있는 사람과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연결돼 서로 재화, 용역, 대가를 주고받는 거래 방식이라고 일컬어진다.  

인공지능의 진출 영역이 더욱 다양해져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분야가 늘어나면서 전문가들은 노동 구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 내다본다. 전문 기획자나 디자이너, 사진작가 등이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여 일을 진행하고 종료 후에는 해체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유연한 근로라고 평가하는 관점이 있다. 자기만의 전문성을 가지고 1인 기업가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필요에 따라 관리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자유계약 형태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제도가 나타나는 시대적 흐름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사회시스템이 변화하면 인간들은 우선적으로 그 부정적인 행태를 발전시키기 마련이다. ‘인간 개인은 선하지만, 인간들이 집단이 되면 사악해진다’는 명제가 딱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플랫폼과 시스템을 갖춰 제도를 장악한 자본가는 뒤로 숨고, 관리자를 내세워 자유계약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을 시스템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요즘 상영되고 있는 영국의 노장감독 켄 로치가 만든 <미안해요, 리키>다. 켄 로치는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평생 일을 해도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삶, 까다롭고 멀기만 한 복지 시스템을 고발하면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자본주의의 물결이 소시민들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판단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자본이나 플랫폼이란 시스템을 가진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계속 소시민들이 소외되고 가정이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극중 리키와 애비는 큰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전셋집을 전전하는데 지쳐 내 집 하나 소유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을 원할 뿐이다. 

건설 회사에서 일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실직한 주인공 리키는 안 해 본 일 없이 힘들게 살다 ‘개인가맹주’로 취급되는 택배 기사로 취직한다. 회사는 그를 고용하는 게 아니라 합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리키가 기대한 것은 자유롭게 내 노동력과 시간을 운용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회사는 보장하고 책임지는 것 없이 실적에 대한 강요만 할뿐이다. 회사가 그렇게 강조하던 ‘개인가맹주’라는 개념은 자율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난처한 일이 생기면 알아서 해결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택배라는 일은 신속 정확한 배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정확하게 배송해야 하는 유형의 배송을 다닐 땐 하루 종일 달려야 하고, 업계에서 ‘총’이라 부르는 택배 등록 및 추적 단말기는 차량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2분을 넘어가면 알람을 울린다. 잔인할 정도로 이익만을 추구하는 노동 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가맹주들의 사정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회사에 얼마나 이익을 안겨주었는지를 따지고 조금이라고 손해가 되는 것은 개인이 배상해야만 한다. 가정에 급한 일이 있어 시간을 비워야 할 경우 대체인력을 투입시키지 못하면 그 시간만큼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며, 사고를 당하면 전적으로 개인이 물어내야 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의 존엄은 지켜지지 않는다. 인간답게 사느냐의 여부는 플랫폼에 들어온 개인이 얼마나 일해서 부를 가져가느냐의 문제지 회사에서 지켜줘야 할 어떤 의무도 없다. 징계를 받는 아들 때문에 교사와 상담하러 학교에 가게 되면 감점 대상이고 그 시간만큼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강도들이 물건을 빼앗고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단말기를 부수면 엄청난 금액을 전부 개인이 배상해야 한다. 가정 파탄의 위기에 놓인 리키가 단 3일간의 휴가를 원하면 회사는 벌금을 거론하며 단칼에 거부한다. 개인의 사정은 고려대상이 아닌 신자유주의의 무서운 단면이다.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자고 시작한 일이 오히려 그들에게서 사람다운 삶을 빼앗아간다. 담당하는 환자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피는 간병보호자인 아내는 그 진심 때문에 오히려 일도 가정도 놓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 된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말썽을 일으키는 아들 셉, 화목했던 예전의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어 엇나가는 가족들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딸 라이자 등 가족들은 저마다 힘겨운 생을 어렵게 헤쳐 나가고 있다.

리키는 사고를 당해 한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한다고 밴을 운전하려고 한다. 영화 내내 아버지에 맞서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아들이 새벽잠에서 깨어나 한쪽 눈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운전을 하면 큰 일 난다고 필사적으로 잡을 때는 역시 가족이구나 싶어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친 채 일하러 가야 한다고 밴을 출발시키는 리키, 점점 더 노예가 되는 디지털 시대 노동자의 미래는 그만큼 암울하다. 자본을 가진 주인은 뒤에 숨고, 기계가 주인이 되어 인간을 디지털에 감시당하는 노예로 전락시킨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년)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83세의 영국 노장감독  켄 로치의 눈은 하드보일드 영화처럼 냉철하게 현실을 담아내지만 속으로 흐르는 가슴과 인간사랑은 뜨겁다. 

이런 문제를 단지 꾸민 영화의 이야기라고 간과할 수만은 없다. 시스템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미 시스템은 인간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누구도 자신이 일하는 영역의 시스템을 도외시할 수 없다. 물론 철밥통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고 강성노조도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자본과 플랫폼이 상전이 되고, 개인은 그 하부개념으로 전락하는 사회는 활력과 발전동력이 크게 쇠퇴할 수밖에 없다. 영국 산업혁명 초기에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비참해졌듯, 지금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시대의 초기에 시스템과 플랫폼이 인간을 압도하는 현상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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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득 2019-12-28 21:53:12
좋은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