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지나치다
길을 지나치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1.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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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숙, 등대, watercolor and aclic on paper, 54X45cm, 2017
신의숙, 등대, watercolor and aclic on paper, 54X45cm, 2017

 

매번 다니던 길을 지나쳐 
다른 길에 들어선다면,
당신 속에 
무엇인가 들어와 있는 게다.

다른 길에 들어서도
다른 길인 줄도 모른다면,
당신 속에 
누군가 들어와 있는 게다.

익숙한 길을 피해서 
구태여 낯선 길을 걷는다면,
당신 속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게다.

낯익은 길이든 낯선 길이든
그것이 다만 길이기 때문에
끝도 없이 걸어간다면, 
당신 속에 
당신은 없는 게다.

당신도 없는 길을 당신이 걷는다면
당신 속에 
당신은 이미 가고 
다시 당신이 오고 있는 게다.

운전을 하면서 잠시 다른 생각을 하거나 동승자와 얘기를 하다가 가야 할 길을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난감하지요.

그러나 매일 다니는 길을 지나쳐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의 일탈, 다른 곳에 대한 향수, 낯선 것에 대한 동경을 무의식이 주동한 게 아닌지요. 

직장을 다닐 때 얘깁니다. 직장에서 집이 멀지만 항상 직장에 가장 먼저 나오시는 분이 계셨는데 하루는 직장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더욱 그랬했지요. 그 전날 나와 함께 있다가 헤어졌기 때문에 내 걱정은 더욱 심했습니다. 집으로 전화를 하면 집에서는 출근했다고 하고 핸드폰으로 그분에게 전화를 하면 불통 신호만 들려왔습니다. 이래저래 그분을 찾기 위해서 궁리를 하다가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분이 예전처럼 일찍 출근을 해 있었습니다. 왜 출근을 안 했냐고 물으니, 졸다가 내려야할 역을 놓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오시지하고 말씀드리니 갑자기 직장에서부터 떨어져 나와 그냥 하루를 쉬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들 모두는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부터 일과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적이 있겠지요.

‘당신도 없는 길을 당신이 걷는다면 / 당신 속에 / 당신은 이미 가고 / 다시 당신이 오고 있는 게다.’

상실과 잃어버림이 새로운 것을 되찾게 합니다. 옛것을 잃어야 새것을 만날 수 있겠지요. 옛사람을 버려야 새사람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매번 다니던 길을 지나쳐 다른 길로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길, 새로운 나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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