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5일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법원으로부터 보석을 허가받아 도쿄구치소에서 풀려나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출국 제한 상태였으나 지난달 31일 레바논으로 이동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4월 25일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법원으로부터 보석을 허가받아 도쿄구치소에서 풀려나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출국 제한 상태였으나 지난달 31일 레바논으로 이동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할리우드 영화처럼 일본을 빠져나온 카를로스 곤(65)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에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외신들은 곤 전 회장의 탈출로 인해 일본 사법제도가 전 세계적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지난 1999년 닛산 최고운영자(COO)로 취임한 뒤,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누적된 적자로 위기에 몰려있던 회사를 살려낸 인물이다. 특히 ‘종신고용’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고용문화를 깨뜨리고 3년 동안 전 직원의 15%(2만2900명)을 감원하고 300개가 넘는 대리점을 폐점하는 등의 조치로 닛산의 구세주로 떠올랐으나 일본 노동계에선 원성의 대상이 됐다. 

곤 전 회장이 고발당한 것은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인 2018년 11월. 유가증권보고서에 약 50억엔의 소득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전격 체포된 곤 전 회장은 이후 특수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왔다. 

문제는 곤 전 회장의 수사 과정에서 일본 사법제도의 결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 일본 검찰은 기소 전 용의자르 48시간 동안 구금하고 변호인 입회 없이 심문할 수 있다. 이후에도 최장 23일까지 용의자를 구금할 수 있으며, 새로운 혐의가 발견될 경우 다시 소환해 구금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즉, 검찰이 의도적으로 별건수사를 추진할 경우 용의자를 계속해서 붙잡아둘 수 있다는 것.

이처럼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압박이 강하다보니 피의자의 자백 비율도 85%에 달하며, 기소 전 보석제도가 없어 자백을 한다 해도 보석이 되지 않는다. 일본 검찰의 1심 무죄율 또한 0.1% 수준으로 ‘99.9 형사전문변호사’라는 드라마가 나올 정도다. 

실제 곤 전 회장은 소득 축소 외에도 배임 등 별건 혐의 추가로 세 차례나 체포당하며 곤욕을 치렀다. 첫 체포 이후 곤 전 회장은 방어권을 주장하며 보석을 요청한 끝에 지난해 3월 6일 10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4월 3일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됐다”는 트위터 발언이 문제가 돼 하루 만인 4일 다시 체포당했다. 검찰이 내세운 혐의는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것이었지만,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곤 전 회장은 재차 보석을 요청해 지난해 4월 25일 5억엔의 보석금을 추가로 내고 풀려났다. 다만 주거 제한과 출국금지 등의 조건이 달린 보석이었다.

이러한 수사 과정에 대해 서구 언론들은 과도한 인권침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BBC는 지난달 31일 “카를로스 곤과 일본의 인질사법(hostage justice) 제도”라는 기사에서 “일본의 형사제도는 심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BBC는 이어 “용의자가 무죄라 해도 (일본에서는)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것이 일본 인질사법 제도의 가장 큰 폐단”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곤 전 회장은 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에 도착한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나는 차별이 만연하고 기본적 인권조차 부정되는 일본 사법체계에 더는 인질로 잡혀있지 않을 것”이라며 “정의가 아니라 불의와 정치적 박해를 피해 도망쳤다”고 주장했다.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출 과정을 비롯해 수사 과정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레바논에 곤 전 회장의 신병 인도를 요청한 상태지만, 양국이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곤 전 회장이 일본에 다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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