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산불이 진행되는 도중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산불이 진행되는 도중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재난·재해는 정치·사회적 갈등과 달리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점에서 국정운영을 맡은 지도자에게는 암초와 같지만, 동시에 지도자의 능력과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최선의 대응으로 위기를 극복하면 지지층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지만, 대응이 미흡할 경우 지지율이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하락하기도 한다. 

◇ 모리슨·박근혜, 부실한 재난 대응에 지지율 급락

산불 도중 하와이로 휴가를 다녀와 물의를 빚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후자의 사례에 가깝다. 13일 ‘디오스트레일리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호주 여론조사업체 ‘뉴스폴’이 지난 8~11일 1505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리슨 총리의 지지율은 12월 첫째주(45%)보다 8%p 하락한 37%를 기록했다. 반면, 야당인 노동당 대표 앤서니 알바니스의 지지율은 같은 기간 40%에서 46%로 6%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당도 모리슨 총리의 휴가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집권여당연합인 자유국민연합의 지지율은 42%에서 40%로 소폭 하락한 반면, 노동당은 33%에서 36%로 3% 회복하며 격차를 좁혔다. 집권당과 야당의 양자대결 결과도 12월 52대48에서 휴가 논란 이후 49대51로 역전됐다. 

호주 외에도 미흡한 재난·재해 대응으로 강력했던 지지층을 잃고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경우는 빈번하다. 단단한 핵심지지층을 기반으로 취임 초 60%에 달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초기대응 부실로 인해 다시는 참사 이전 수준의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 직전인 2014년 4월초 57%를 기록하며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초기대응 부실로 여론이 돌아서며 지지율이 47%로 무려 10%p나 급락했다. 7월 41%까지 떨어진 지지율은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같은 해 12월 국정농단 의혹이 공개되며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4년 국정지지율 추이. 자료=한국갤럽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4년 국정지지율 추이. 자료=한국갤럽

◇ ‘랠리 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

반면 특출한 위기 대응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재난·재해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이례적인 경우도 있다. 2001년 9·11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갤럽에 따르면, 사건 발생 전까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며 51%까지 떨어졌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참사 이후 무려 90%까지 급등했다. 참사 당시 유치원 참관 중이던 부시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도 7분 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 자리를 뜨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을 고려하면 예상 밖의 상승세를 보인 것.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이처럼 외부적 충격으로 지지율이 급등하는 현상을 ‘랠리 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Rally round the flag effect)’라고 표현한다. 자연적·내부적 요인으로 발생한 재난이 아니라, 외교적 위기나 전쟁의 경우 여론이 결집하면서 오히려 국정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하게 된다는 것. 실제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9·11 사태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며 57%까지 떨어졌지만, 2003년 초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면서 다시 71%까지 치솟았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 2001년 9.11 사태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지지율이 급변하는 것이 확인된다. 자료=갤럽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 2001년 9.11 사태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지지율이 급변하는 것이 확인된다. 자료=갤럽

'랠리 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를 처음 검증한 이는 정치학자 존 뮬러다. 뮬러는 1973년 발간한 저서 ‘전쟁, 대통령, 여론’에서 ▲국제적 차원의 사건 ▲미국, 특히 대통령과 직결된 사건 ▲구체적이며 극적이고 명확하게 집중된 사건이 이러한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유형의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9·11 사태와 같은 테러나 군사적 분쟁이다.

과거 여론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랠리 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가 발생한 다양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갤럽에 따르면,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62%에서 74%로 상승한 바 있다. 일명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W.H. 부시 전 대통령도 걸프전으로 59%에서 89%까지 지지율이 단기간에 40%p나 급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 또한 ‘랠리 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의 신봉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이란과의 군사적 분쟁을 일으키며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직 이란과의 갈등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및 외교정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누적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솔한 외교정책으로 모리슨 총리와 같은 지지율 폭락을 겪게 될지, ‘랠리 라운드 더 플래그 효과’로 부시 전 대통령과 같은 극적 반전을 이룰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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