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의 교훈
패전의 교훈
  • 임순만(언론인)
  • 승인 2020.01.1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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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벽두에 우리는 아주 독특한 외신뉴스를 접한 바 있다. 1월3일 미 국방부가 미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의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공습으로 제거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이 공습을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 것과 2019년 K-1 공군기지를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뉴스가 독특한 것은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치른 적국이며, 미국과 이라크도 전쟁을 치른 적국인 상태에서 이란 군 사령관이 이라크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국제사회 패권 장악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20세기 들어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가 얼마나 참혹하게 변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전쟁을 치르면 이겨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겼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일도 아닐 것이다. 전쟁은 피를 부르는 만큼 승리했다고 해서 그 피의 흔적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할 국가경영이다. 

이라크와 이란은 1980년부터 8년간 전쟁을 치른 나라다. 아랍 문화권을 대표하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페르시아 문화권을 대표하는 이란이 혁명으로 혼란에 빠지자 지역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개시했다. 단기전을 예상한 이 전쟁은 의외로 장기화 됐고 승자 없는 전쟁으로 기록됐다.

그후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기습 점령했다가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공격(걸프전)으로 1991년 2월 패배하여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2003년에 이라크가 보유한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전을 재개했다. 후세인은 이 전쟁에서 패하여 바그다드 교외로 도주했으나 미군에 체포됐다. 결국 후세인은 전범재판에 회부돼 2006년 12월 30일에 사형이 집행됐다. 

과거의 이라크는 이란인들이 발붙일 수 없는 적국이었다. 그러나 후세인 제거 이후, 특히 ISIS(이슬람국가 IS의 옛 명칭)의 등장 이후 이라크는 이란인들에 의해 장악되다시피 한 상태가 됐다. 시장에는 이란인들이 들끓고, 이란에서 온 마약이 넘쳐난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나자프에 있는 시아파의 성지 이맘 알리 모스크는 매년 수백만명의 이란인이 다녀가는 순례지가 됐다. 

2014년 6월 시리아와의 국경에서 IS(이슬람국가)가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이라크는 지원을 해달라고 미국에 직접 요청했지만, 미국이 공중 폭격을 지원하는 데는 3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란은 24시간 만에 트럭에 사람과 물자, 무기를 싣고 와 바그다드를 지키는 데 도와주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라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의 준동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이란은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PMF·인민동원군)를 조직해 이라크를 도와준 이후 이라크에서 계속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라크는 촌각을 다투던 당시 이란을 의지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거의 없었다. 서쪽 이라크와 1440㎞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으로서는 이라크를 통해 시리아와 레바논으로 연결되는 육상 통로를 얻었다. PMF는 IS를 격퇴한 이후 이라크 장악력을 계속 높여왔고 이라크 정치에도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이라크 의회는 이란의 영향력 아래로 흡수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라크에서 사망함으로써 이라크는 대리전을 치르는 전장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1월 8일 이란은 이라크 아인 알사드와 에르빌에 있는 미군 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미국과 이란이 이라크 영토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전쟁터가 돼버린 것이다. 이라크 의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미군 철수 결의안을 가결했지만 미 국무부는 이라크 내 미군 주둔은 IS와 전투에 결정적이라며 이라크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라크에는 5천2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주권이 있고 안정적인 이라크에 친구이자 파트너가 되길 희망하며, 이라크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역할을 증대하겠다”는 것이다. 의회의 영향력까지 장악한 이란이 이라크를 떠날 리도 없다.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의 전장으로 변하면 이란과 터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와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이 각축을 벌이는 악몽을 피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라크는 이웃 나라인 시리아처럼 사실상 국가 와해 상태를 맞게 될 것이다.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에서는 각각 최소 수백만명이 넘는 난민이 국내외를 표류하고 있다. 

인류 문명 최초의 발생지이자 바빌론 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이라크의 영광은 오늘날 이렇게 초라해졌다. 국제전에서 패하면 곧바로 주변세력들의 각축장이 되고 마침내는 여러 세력들이 전쟁의 치르는 대리전의 전장이 되며, 국가가 와해 직전으로 몰린다는 것이 현대의 역사가 보여주는 전쟁의 교훈이다. 

이라크의 비극은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걸프전에서 비롯됐다. 세 확산을 위해 침공했지만 곧 미국 중심 서방의 역공을 받고 쫓겨난 이후 후세인이 제거되면서 국가지도의 축이 사라진 상태다. 무모한 전쟁을 벌이면 국가가 어떻게 되는지를 이라크의 경우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는 흔치 않다. 티그리스 강물을 한 번 마신 사람은 다시 한 번 티그리스로 돌아온다는 그들의 전설이 있다. 그러나 국토의 대부분이 폐허가 된 이라크가 바빌론의 영광은커녕 국가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지금 북한은 계속적으로 평화적 국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현대의 역사는 패전국이 되면 나라가 어떻게 끝장나는 이라크의 경우를 통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지구촌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계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는 북한은 국제적인 현실성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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