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새벽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폭격당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사령관의 차량. 사진=연합뉴스
3일 새벽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폭격당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사령관의 차량.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우리 대통령은 협상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그는 약하고 무력하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재선의 유일한 방법은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것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 작전을 승인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열 달 앞두고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란 공습’ 카드를 꺼냈다며, 정치적 이익을 국가안보에 우선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위에 인용된 발언은 민주당 소속 의원이나 반(反)트럼프 언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저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말한 것이다. 그는 지난 2011년 11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난하며, 그가 재선을 위해 이란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란과의 군사적 갈등 없이 재선에 성공했고, 이후에도 유화적 중동정책으로 2015년 이란과의 핵 합의를 성사시키며 트럼프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전쟁을 유도할 것이라 비난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오히려 자신이 ‘이란 공습’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솔레이마니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한 탄핵 위기와 대선을 10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답보상태인 지지율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에 정치적 배경이 놓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습’ 카드는 효과가 있었을까? <뉴스로드>는 이란 공습 전후 미국 내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변화 양상을 알아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1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고 이란 공격을 시도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 이란 공습 전후 트럼프 지지율 '요지부동'

최근 여러 언론·여론조사기관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의외로 이란 사태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 우선 가장 최근 발표된 퀴니피악대학 1월 2주차(1월 8일~12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43%로 지난해 12월 2주차(12월 11일~15일) 조사 결과와 동일하다. 상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보수성향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도 13일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48%로 이란 사태 이전과 동일하다고 발표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 큰 변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최신 여론조사와 이란 사태 직전 조사 결과를 비교하면 로이터·입소스 46%→43%, 이코노미스트·유고브 43%→43%, 더힐·해리스엑스 49%→47% 등으로 일부 조사에서 소폭의 하락세가 확인되는 정도다. 

◇ 중도층, 이란 공습에 찬반 의견 엇갈려

트럼프 대통령의 요지부동 지지율은 어떤 방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흥적인 공습 작전으로 외교적 실책을 저질렀지만 강력한 지지층의 존재가 타격을 최소화했다고 볼 수도 있고, 적대국 군부 실세 타격이라는 성과에도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다고 볼 수도 있다. 확실한 해석을 위해서는 트럼프 정부의 이란 정책 자체에 대해 미국 사회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ABC-입소스가 지난 10~11일 525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문제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가 56%로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43%)보다 13%p 더 많았다. 솔레이마니 제거로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고 답한 응답자는 겨우 25%로, 덜 위험해졌다(52%)는 응답자의 절반 수준이었다. 

ABC-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정책에 대한 부정 의견이 긍정 의견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입소스
ABC-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정책에 대한 부정 의견이 긍정 의견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입소스

이 결과를 놓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정책에 낙제점을 받았지만, 간신히 기존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조사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정치매체 폴리티코와 모닝컨설트가 솔레이마니 사망 직후인 지난 4~5일 전국 유권자 1995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에 대한 여론은 47% 대 40%로 찬성이 반대보다 7%p 더 높았다. 

이 조사의 샘플은 민주당 지지자가 814명, 공화당 지지자가 678명, 중도가 503명으로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구성돼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이란 정책이 생각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유는 뚜렷하다. 중도층이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에 기대보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힌 503명 중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0%로 반대(36%)보다 4%p 높았다. 정치 성향이 중도라고 밝힌 응답자 578명의 경우 찬성과 반대가 각각 39%, 41%였다. 트럼프의 ‘이란 공습’ 카드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로는 중도층 내에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은 중도층 내 평가가 반반으로 나뉘면서 이란 사태가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게다가 결집력에 있어서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이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는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에 86% 대 4%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반대층은 18% 대 76%로 지지층보다는 의견이 덜 수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입장을 정하지 못한 응답자의 비중도 지지층(9%)이 반대층(15%)보다 적다. 이처럼 트럼프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강한 결집력을 보여주면서 민주당 지지층이 더 많이 포함된 샘플 구성에도 불구하고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에 대한 찬성 여론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된 것이다. 

폴리티코-모닝컨설트 여론조사 결과, 솔레이마니 공습에 대해 무당층은 뚜렷한 찬반 없이 중립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모닝컨설트
폴리티코-모닝컨설트 여론조사 결과, 솔레이마니 공습에 대해 무당층은 뚜렷한 찬반 없이 중립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모닝컨설트

◇ 이란 공습은 재선에 도움이 될까?

단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습’ 카드의 정치적 영향력은 ‘+’도 ‘–’도 아닌 ‘0’인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프에서 이란 공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무당층·중도층의 표심을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새다. 

다만 장기적으로 이란 사태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미칠 영향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미국 유권자들이 안보 불안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으로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는 응답자는 32%, 덜 안전해졌다는 응답자는 50%였다. 당장 작전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중도층의 안보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힌 503명 중 솔레이마니 제거로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고 느낀 응답자는 22%로 위험해졌다고 답한 응답자(52%)보다 30%p나 적었다. 

솔레이마니 제거로 이란과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응답자도 67%로 낮아졌다는 응답자(15%)의 네 배가 넘었다. 공화당 지지층(58% 대 24%)과 트럼프 지지층(53% 대 24%)조차 전쟁 위험이 커졌다는 데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된 중동정책 실패로 불안정한 상황을 초래한다면, 중도층을 비롯해 소극적인 지지층이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칫 즉흥적인 군사적 대응으로 중동 정세가 요동치고 유가가 폭등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40%선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고 경제제재에 집중하겠다며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 뒤에는 ‘이란 공습’ 카드의 효과가 시원찮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놓여 있을 수 있다. 재선을 앞두고 ‘안전운전’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중동 문제와 관련해 한층 온건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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