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왼쪽)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사진=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왼쪽)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한국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이들은 한국의 군 현대화 노력 및 국방예산 증액 계획 등을 언급하며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동맹에 핵심적인 기여를 해왔다... 미국은 한국의 공헌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어 “동맹국으로서 우리는 한국의 방위비를 분담하고, 한국인들의 안정되고 번영하는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자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한 동등한 파트너로서 한국은 자국 방위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하며,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과 직접 연관된 비용의 3분의 1만 부담하고 있다며, 주둔비용이 늘어날수록 한국의 부담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의 90%는 주한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근로자들의 임금, 건설계약, 서비스 비용 등의 형태로 지역경제에 환원된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이들이 기고한 글의 제목은 ‘한국은 동맹국이지, 부양가족(dependent)이 아니다’라는 제목이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3분의 1만 부담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다시 한국 경제에 환원된다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부양가족’이라는 표현이 굴욕적이더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뉴스로드는 폼페이오·에스퍼가 내세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의 근거가 사실인지 짚어봤다.

2019 회계연도 미군 해외 주둔비용. 빨간색 네모가 주한미군 항목. 자료=미국 국방부
2019 회계연도 미군 해외 주둔비용. 빨간색 네모가 주한미군 항목. 자료=미국 국방부

◇ 방위비 분담률, 간접지원 고려하면 70% 수준

우선 한국의 방위비 분담이 적절한 수준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정확한 수치를 알아야 한다. 미 국방부가 지난해 3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 회계연도 기준 주한미군 주둔비용은 총 44억2540만 달러. 지난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9억2400만 달러임을 고려하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약 20.9%를 부담하는 셈이다. 이는 폼페이오가 말한 ‘3분의 1’보다도 적은 수치다. 

그렇다면 폼페이오는 오히려 동맹국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수치를 과장한 것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은 미군 인건비, 작전 및 유지비, 건설비, 가족주거비, 회전자금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미군 인건비는 그동안 한국이 부담하는 항목이 아니었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에서 미군 인건비 19억9910만 달러를 제외하면, 한국의 부담은 38.1%까지 높아진다. 

미국 내 전문가들이 추산한 한국의 방위비 분담률은 이보다 높다.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 ‘아메리칸 액션 포럼’이 지난 2016년 발표한 ‘동맹과의 비용 분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분담률은 41%로 일본(50%)보다는 적지만, 독일(18%)의 두 배가 넘었다. 동맹국의 안보비용 분담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GDP 대비 국방예산 또한 2018년 기준 한국(2.6%)이 독일(1.2%), 일본(0.9%)보다 높다. 국가별 방위비 분담 항목과 산정방식이 달라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한국이 다른 동맹국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안보 부담을 미국과 나눠서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8년 방위비 분담금 배정액 현황. 자료=국방부
2018년 주한미군 주둔비용 직·간접 지원 현황. 자료=국방부

게다가 한국은 직접 지급하는 방위비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2018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은 9320억원의 방위비를 비롯해 1조4542억원의 기지 주변 정비비용 등 총 2조4279억원의 비용을 직접 지원했다. 여기에 주한미군이 무상 공여한 토지의 기회비용(임대료) 7105억원, 각종 세금 및 인프라 이용료 감면비용 1312억원 등 간접지원비용을 더하면 지원 규모는 3조3868억원에 달한다. 

당장 2019년 주한비군 주둔비용과 2015년 한국이 지원한 비용을 비교해도 분담률은 약 66.1%에 달한다. 실제 WSJ는 지난 2018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률을 산출할 때 미군에 무상 제공하는 토지 임대료를 포함해야 한다며,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한국의 분담률은 67%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 에스퍼 "방위비 90%는 한국 경제에 환원" 주장의 허점

그렇다면 “방위비의 90%는 지역 경제로 환원된다”는 에스퍼 장관의 주장은 타당할까? 방위비로 지출된 돈이 다시 지역 경제에 흡수된다면 증액 요청에 반대할 명분도 약화되기 때문에, 에스퍼 장관의 주장을 검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국방부는 ‘2018 국방백서’에서 “방위비분담금 대부분은 우리 경제로 환원됨으로써 일자리 창출, 내수 증진과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며 “인건비의 100%는 주한미군사령부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에게 지급되고 있으며, 약 12%의 설계・감리비를 제외한 군사건설비의 88%와 군수지원비의 100%는 우리 업체를 통해 현물(시설물, 장비, 용역 등)로 지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에 온전히 돌아가는 비중이 90%라는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방위비 분담금 중 46%(4442억원)은 막사·환경시설 등 주한미군 시설 건축에 사용됐으며, 15%(1450억원)은 탄약 저장, 항공기 정비, 철도·차량 수송 등에 사용됐다. 

반면, 주한미군에 고용된 한국인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는 39%(3710억원)으로 에스퍼 장관의 주장(90%)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군사건설·군수지원 비용 대부분이 국내 업체를 통해 한국 경제에 환원된다고 볼 수 있지만, 대체로 단순 건설·노무사업으로 부가가치가 높거나 다른 산업과의 연계효과를 발생시키는 분야는 아니다. 게다가 해당 비용을 고부가가치 산업이 투자하지 못함으로서 발생하는 기회비용, 주한미군 주둔으로 발생하는 환경문제 등 각종 비용 등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방위비의 90%는 한국 경제로 환원된다”는 에스퍼 장관의 주장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위한 ‘블러핑’(bluffing·허세)에 가깝다. 

2018년 방위비 분담금 배정액 현황. 자료=국방부
2018년 방위비 분담금 배정액 현황. 자료=국방부

◇ 미국 언론 "한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는 과도"

트럼프 정부의 과도한 방위비 증액 요구는 미국 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 “(에스퍼와 폼페이오의) 기고문은 한국이 마치 동맹이 아니라 딸린 식구처럼 행동한다는 함의를 담아 한국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며 “미군의 동맹국 주둔 목적은 미국의 이익을 지키고 힘을 과시하는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위험할 정도로 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베테랑 외교관과 분석가들의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미 국익연구소(CNI)의 아시아 전문가 해리 카지아니스는 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미국이 동맹을 맺는 이유부터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는 동맹국을 마치 미국의 보호를 받기 위해 아양을 떠는 마피아처럼 다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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