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걷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걷고 싶었습니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2.0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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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권옥희, 코타키나발루 탄중아루 해변
사진 권옥희, 코타키나발루 탄중아루 해변

 

오랫동안 걷고 싶었습니다.
빠르거나 늦지도 않게
나귀처럼 걷고 싶었습니다.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좁은 길로 걷고 싶었습니다.
당신과만 걷고 싶었습니다.

심심풀이로 풀꽃 향기, 풀뿌리 씹으며
물소리 나는 냇가 따라 걷고 싶었습니다.
하늘과 만나는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아지 못한 길을
걷다가 힘들면 당신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뒤돌아보며 걷고 싶었습니다.

걷고 싶었습니다.
아무 날이나 빈 주머니에 손 찌르고
허적허적 걷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이 곱게 곱게 만들어 놓은 길을 
당신도 나도 아직은 눈치 채지 못한 
사랑으로 걷고 싶었습니다.

너무 투명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길을
눈부시게 빛 어깨에 메고
걷고 싶었습니다.

걷다 보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길을 
걷는 일만으로 걷고 싶었습니다.
걷다가 신발도 남기지 않고 
길 밖이나 길 안으로 
당신과 함께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지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책 읽고 글쓰기입니다. 음악은 클래식을 주로 듣지만 팝이나 가요도 좋아합니다. 심심할 때면 종종 클라리넷 연주도 하고 지인들과 합주를 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집 뒤의 낮은 산길을 따라 걸어가는 산책을 더없이 좋아합니다. 산길이 펼쳐내는 계절과 날씨, 냄새와 색깔, 온도와 명암, 새소리와 절의 풍경소리는 항상 나를 유혹합니다. 제 시와 사색의 원천은 이 산책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대부분 홀로 산길을 걷지만 어느 날인가 이 산길을 다정한 사람이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간 길을 되오지 않고 길이 끝나 사라지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나의 산책은 잠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꿈을 꾸는 길이기도 합니다. 

‘걷다 보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길을 / 걷는 일만으로 걷고 싶었습니다. / 걷다가 신발도 남기지 않고 / 길 밖이나 길 안으로 / 당신과 함께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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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2020-02-07 12:16:13
강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