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안과병원
실로암 안과병원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3.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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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자. 봄, 혼합재료, 10호

우산을 펴면 비가 그쳤다.

춘분 다음 날의 낮 길이만큼
처마 밑에 새순이 돋고
봄비가 아지랑이처럼 퍼져나갔다.

출입 여닫이문으로
눈이 바알간 사람들이
몇은 나고 몇은 들고
싱겁게 내 구두코가 젖고 있었다.

아직 피지 않은
목련의 꽃봉오리 위에
꽃을 만드는 빗방울.

병원의 앞뜰에는
젊은 여의사가 봄처럼 웃고 있는데,

우산을 접으면 비가 내렸다.

그럴 때가 있지요. 일기 예보를 듣고 우산을 들고 나갑니다. 그런데 비가 오다가 그쳤다가 해가 났다가 다시 구름이 나타나고, 우산을 펴면 비가 그치고, 우산을 접으면 비가 내리고, 여우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있지요.

그날은 실로암안과병원 앞을 지나칠 때였습니다. 안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들고나는 병원 앞, 눈에 안대를 한 환자들을 몇몇 보았는데 어쩌면 이 안과 환자들이 안대만 벗으면 목련이 피고 봄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요 9:6~11)에는 ‘실로암 못’에 눈을 씻으면 소경이 밝은 눈을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날 실로암 못에 마음과 눈을 씻고 ‘순수의 봄’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라는 돌림병이 세상을 어수선하게 해도, 올해도 ‘봄은 젊은 여의사'처럼 웃겠지요. 오랜 추억의 풍경 꺼내 옷처럼 입어 봅니다. 봄맞이 준비를 해 봅니다. 

*실로암안과병원 : 서울특별시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함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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