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꽃잎을 그리워하는 동안
꽃잎이 꽃잎을 그리워하는 동안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3.2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보균. 신사1. 78×20x14cm. 알루미늄.
정보균. 신사1. 78×20x14cm. 알루미늄.

꽃봉오리에서 꽃잎 하나가
자신의 발치까지 떨어지는 동안,

떨어진 꽃잎이
여린 숨을 쉬는 동안,

시드는 꽃잎이
봉오리에 아직 달려있는 꽃잎을
그리워하는 동안,
그리워하면서 부서지는 동안,

그 그리움의 안타까움이
힘들게 팽창하고 있는 동안,
그동안만은,

시간은 그리움의 문을 두드리지 못합니다.

일이나 공부나 독서나 무슨 일이든 삼매三昧에 들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릅니다. 종교인들은 기도를 하거나 참선에 들어도 그렇다고 합니다. 오로지 한 가지에 몰두할 때 생기는 현상이지요. 몰두를 통해 우리가 우리를 잊을 때 역설적으로 우리의 존재가 뚜렷해집니다.

우리는 종종 무슨 일에 몰두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깊은 희열을 선물합니다. 날것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지요.

사랑하는 것에, 그리워하는 것에 몰두할 때도 그렇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동안, 그리워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몸과 맘을 둘러싼 우리의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옵니다. 시들어 부서지는 꽃잎처럼 우리의 삶은 유한하나 몰두의 자기 잊음을 통해 시간이 아예 없는 것 같은 ‘영원한 한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는 황홀에 잠깁니다.

‘그 그리움의 안타까움이 / 팽창하고 있는 동안, / 그동안만은, // 시간은 그리움의 문을 두드리지 못합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