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애인의 말
어느 장애인의 말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4.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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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유성이. GATE_청동인간-(도자)ceramic,50x100x40cm
유성이. GATE_청동인간-(도자)ceramic,50x100x40cm

백 켤레의 구두를 묻어 주세요.

육십 년 전의 구형과 최신형까지
그 사이에 드문드문 복고풍의
레이스가 달린 구두도 넣고요.

낮은 굽과 높은 굽도 좋아요
장화와 단화를 넣어 주시고
화려한 것도 괜찮겠어요.

유리 구두, 가죽 구두, 비단 구두
색깔이 고우면 더욱 좋아요.

상표가 달린 새 구두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내 옆에 가지런히 묻어 주세요.

내 죽으면 의족 대신 신을 수 있게
백 켤레의 질긴 구두를 묻어 주세요.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은 약 5%, 20명 중의 1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선천선 장애는 5% 정도이고 후천적 장애가 90% 정도입니다. 출생 시 원인과 원인 미상이 5% 정도입니다. 등록 장애인인의 통계이니 실제 장애인은 이보다 더 많을 겁니다.

후천적 장애는 질환이나 사고가 대부분입니다. 장애의 종류는 신체적 장애가 있고 정신적 장애가 있습니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 심장장애, 호흡기 장애, 뇌병변 장애, 발달장애, 신장장애, 정신장애, 간 장애, 안면 변형, 장루·요루 장애, 간질장애 등입니다. 우리가 평시에는 듣기 쉽지 않은 장애의 종류입니다. 아마도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관의 종류만큼 장애의 종류가 있겠지요.

우리가 살면서 질환이나 사고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지인들 중에 얼마 전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장애인이 된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고령일수록 장애의 비율이 높아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내가 세 들어 살던 집주인의 딸아이가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손으로 짚고, 방이며 마루를 옮겨 다녔습니다. 하얗고 반듯한 얼굴이었습니다. 항상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렸고 하반신을 긴 치마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언뜻 보면 안데르센 동화의 인어공주 같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가 밖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신발장에는 그 아이의 신발이 가지가지로 여러 켤레 놓여있었습니다. 나는 그 신발을 볼 때마다 깊고 아득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내 죽으면 의족 대신 신을 수 있게 / 백 켤레의 질긴 구두를 묻어 주세요.’처럼 이 시는 이승에서는 이루지 못할 그 아이의 소망을 담았습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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