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에서
다시 제주에서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5.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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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파, 동해바다-2, 한지에 다색목판화, 220x200cm, 2015
정비파, 동해바다-2, 한지에 다색목판화, 220x200cm, 2015

갈대가 흔들리면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저것은 바람이라고.

정강이까지 빠지는 밤안개를 
자꾸자꾸 서쪽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도
바람의 짓이라고.

바위를 향해서 돌진하는 파도도 
기실은 바람이라고 바람의 몸짓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구름의 떠다님도, 감귤처럼 뚝하고
수평선에 떨어지는 태양도 
바람이라고 바람이 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별이 알게 한 못난 사랑도
이 사랑의 소문도 사실은 
바람의 가벼움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눈물을 바람에 말리며
비로소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바람뿐은 아니었다고
오히려 그 바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바람에게 바람처럼 중얼거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잘못된 일이 생겼을 때 유혹에 빠집니다. 이것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싶은 유혹이지요. 그러나 모든 문제의 해결의 단초는 나로부터 풀지 않으면 풀 수 없지요. 푼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습니다. 나로부터 풀지 않는다면 남들도 자기로부터 풀지 않을 테니까요. 남과 나 사이에 핑계와 변명과 회피만 남을 뿐이지요.

김수환 추기경은 ‘내 탓이오’ 운동을 했습니다. ‘내 탓이오’는 먼저 자기 성찰을 하라는 뜻이고, 먼저 도덕적 사람이 되라는 뜻이고, 먼저 타인의 의견과 생각에 귀 기울이라는 뜻일 겁니다. 

사회적인 모순과 부조리도 그렇습니다. 나는 올바른데 사회가 잘못되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자기를  제외한 사회 구성원이 잘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자기 탓이 아니라 사회 탓, 남 탓이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다시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립니다. 

잘못된 모든 것이 남이 한 일이고 남이 저지른 일이고. 남의 실수이라고만 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1장 9절)’처럼 나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숨는 것은 아닌가요. 

이런 사람들은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거나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사람일 겁니다. 세상의 중심에 한 번이라도 서본 사람이거나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걸어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눈물을 바람에 말리며 / 비로소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 그것은 진정 바람뿐은  아니었다고 / 오히려 그 바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 나는 바람에게 바람처럼 중얼거리는 것이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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