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지도
수입 지도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8.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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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이.snake-(페인팅)ceramic, 150x50cm
유성이.snake-(페인팅)ceramic, 150x50cm

 

 어느 서점의 계단을 오르다가 수입 지도라는 것을 보았다. 익숙했던 대로 우리나라를 찾았으나 이내 실수라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 산産 지도처럼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입 지도에는 오른쪽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 지구는 둥근 거니까 그러면 어쩔 것이나 자위했지만, 어린 시절 백지도의 흐릿한 선을 따라 놀던 우리의 땅과 바다는 아니었다. SOUTH KOREA, NORTH KOREA는 눈감고 지나가자. 황하의 누런 물이 흘러듦으로 서해가 YELLOW SEA인 것은 그런대로 좋다. FUKUOKA, SACEBO, NAGASAKI 같은 영문의 대문자 지명들이 제주도를 간신히 보이게 해도 참을 수 있다. 아무래도 제주도는 제주도일 테니까. 그러나 그놈의 지도엔 동해EAST SEA가 없다. SEA OF JAPAN만 있을 뿐 마르고 마르도록 우리가 살 푸른 동해EAST SEA가 없다, 수입품 지도엔.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중국을 등으로 기대고 일본을 밥상머리에 놓고, 푸른 태평양을 앞가슴에 품은 우리나라 지도만 보았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큰 서점에 갔었는데 여러 종류의 지도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북남미, 유럽과 아프리카가 중앙에 있는 지도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변방 오른쪽 끝에 간신히 붙어 있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우리나라는 작았습니다. 순간 나도 그만큼 작아졌지요.

거기에 남북의 분단으로 더 왜소해진 나라, 영문의 굵은 타국의 지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나라를 침범해서 우리나라가 간신히 보이기까지 했지요. 그때는 그것이 수입 지도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귀퉁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화려한 색깔의 세계지도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어렵고 굴곡진 길을 걸어왔는지도 어렴풋이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놈의 지도엔 동해EAST SEA가 없다. SEA OF JAPAN만 있을 뿐 마르고 마르도록 우리가 살 푸른 동해EAST SEA가 없다, 수입품 지도엔.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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