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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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08.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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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교실 풍경, 화선지+목판, 30x20cm
박용진, 교실 풍경, 화선지+목판, 30x20cm

 

새마을기 옆에서
태극기는 펄럭이고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
국기에 대한 맹세
동해물과 백두산이∼
우리는 음악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애국가를 제창한다.

각반 2열 종대 사이로
우리의 그림자를 밟으며 
체육 선생님이 걸어 다니시고 
우리를 마주보고 계시는 담임 선생님
콧구멍 잘 후비는
윤리주임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교장 선생님께 경례
‘충∼효’하면
거수경례로 답례하시는 교장 선생님
바로, 열중쉬어, 쉬어-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시작되고
아∼음, 그리고, 그런데, 따라서, 
그러므로, 해서, 결코, 제군은,
스피커 소리가 깊게 찢어질수록
교장 선생님 이마의 주름은
계급장처럼 빛나고

우리가 오뉴월 햇살에 누우렇게 쓰러져가도
교장 선생님의 훈시는 교육적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계속되고.

강요, 명령, 감시, 감금, 비개성, 획일, 폭압, 폭력, 따돌림, 몰이해 - 이런 것들이 학교에서 만연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나이가 지긋한 분만 학교에서 겪었던 일은 아닐 겁니다. 어찌 보면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품목들일 겁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생각납니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말합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을 한 것은 그가 악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에만 따랐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 곳곳에도 관례와 전통, 명령이라는 핑계로 이 비극적인 ‘학살’이 아직도 만연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교장 선생님 이마의 주름은 / 계급장처럼 빛나고 / 우리가 오뉴월 햇살에 누우렇게 쓰러져가도 / 교장 선생님의 훈시는 교육적으로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계속되고.’ 
 
‘우리는 생각한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살던 대로 생각하게 된다. We must live as we think, otherwise we will end up thinking as we lived’라고 폴 부르제(Paul Bourget, 1852-1935, 프랑스 소설가)가 말했다지요.

일이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자각을 하지 않고 습관대로 실행한다면 ‘애국 조회’는 ‘교육적으로’ 언제 어디에서도 계속되겠지요.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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