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기대다
시월에 기대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10.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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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연, 밤동네.마카.A4
김하연, 밤동네.마카.A4

 

새들은 사라지고
가을꽃들은 
가을 나뭇잎처럼 뚝뚝 떨어집니다.

하늘을 보면
동자부처를 지우는 눈물

일 년은 하루보다 짧고
지난 반생애는 
강물에 비친 구름처럼 흘러갔으나
오늘의 시간은 노동에 지쳐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문밖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세상의 길흉을 짐작하는데
얼마나 당신의 이름을 짓고 불려야
다정히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안개들은 처마 끝에 모여서 
물방울이 되고 
햇볕의 손에 끌려 
투명한 공기로 날아가는 동안도,

내가 기댄 시월은 저물고
물어보지도 않고 세월은
들녘의 초록을 데리고 갑니다.

선명한 것들이 흐려지고 영원할 것 같던 것들이 시들어버립니다. 무엇인가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일순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됩니다. 시간은 더 급히 흘러갑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성과를 위해서 노력한 결과는 대부분 초라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자기 배반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시월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하늘은 맑고 높지만 나는 후회와 탄식과 번민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온 것들은 다 떠날 준비를 합니다. 이미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시월에는 홀로 남겨집니다.

‘내가 기댄 시월은 저물고 / 물어보지도 않고 세월은 / 들녘의 초록을 데리고 갑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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