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뉴스로드] “의사집단은 의료법 이외의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를 유지할수 있으니, 공권력은 전혀 무서울게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이 됐다”

공공의대 논란으로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심화됐던 지난 8월 31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 같은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2000년 의료법 개정으로 인해 의사는 살인, 강도, 성폭행 등의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면허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며, ‘악법’을 개정해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의료계에 대한 비판 여론을 반영한 듯 해당 청원에는 36만명의 동의가 모였고, 현재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실제 의사 면허에 대해 ‘철밥통’, ‘강철면허’와 같은 비난이 제기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청원인의 주장은 이 같은 의료계에 대한 비판을 반영한 과도한 주장일까? 아니면 실제로 의사 면허는 다른 전문직종 면허에 비해 느슨한 기준에 따라 관리되고 있을까? <뉴스로드>가 사실관계를 짚어봤다.

◇ 의료행위 관련 범죄 외에는 면허 박탈 안돼

결론부터 말하면, 의사 면허의 박탈 기준은 국가가 면허를 관리하는 다른 전문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의료법 8조에 따르면,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 등 의료인 면허의 결격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피성년후견인 및 피한정후견인 ▲‘특정 법령’과 관련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 등이다.

의료법 상에 명시된 ‘특정 법령’은 모두 허위진단서 작성, 허위 진료비 청구, 낙태시술, 환자기밀 누설 등 의료행위와 관련된 조항이다. 즉,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려면 의료행위와 관련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야 한다는 것. 살인, 강도, 성폭행 등 일반적인 형사범죄는 의료법의 면허 취소 사유에서 누락돼있어, 의사가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면허를 박탈하기 어렵다.

반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변호사의 경우, 변호사법 5조에 따라 범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다.

2000년 의료법 개정 이전에는 의료인도 변호사처럼 모든 형사사건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면허가 취소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면허 취소 사유가 의료관련 범죄행위로 축소됐다. 이후 의사 면허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개정안이 약 20차례 발의됐지만 대부분 의료계의 반대로 실패했다. 

 

자료=경찰청
자료=경찰청

◇ 늘어나는 의료인 강력범죄, 면허 취소는 '0'건

물론 의료인에게 다른 직업인보다 유독 높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또한, 의료인이 저지른 특정 범죄에 지나친 여론의 관심이 모여 의료인 집단이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불만도 있을 수 있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전문직 강력범죄 중 의료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종교인과 예술인에 이어 3번째다. <뉴스로드<가 지난 2015~2019년 전문직종별 살인·강간·강제추행·절도·폭행 등 범죄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의료인(의사·치과의사·한의사)이 저지른 강력범죄는 3460건(연 692건)으로 종교인(6742건), 예술인(5876건)에 이어 세 번째였다.

문제는 다른 전문직종의 경우 강력범죄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반면, 의료인 범죄는 조금씩이지만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종교인과 예술인의 경우 2015년 1560건, 1237건에서 2019년 1203건, 1034건으로 각각 22.9%, 16.4% 범죄가 감소했다. 반면 의료인 범죄는 같은 기간 681건에서 727건으로 6.8% 증가했다. 이 기간 범죄가 증가한 직종은 의료인과 변호사(75→81건) 둘 뿐이다.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 중 실제로 면허가 취소된 경우는 얼마나 될까?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2018년 살인·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각각 37명, 848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살인·성범죄로 면허가 취소된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같은 기간 단 5명의 의료인(의사 4명, 한의사 1명)이 비도덕적 진료(성범죄 명시)로 자격정지 1개월 수준의 행정처분을 받았을 뿐이었다.

◇ 강력범죄 저질러도 3년 지나면 면허 재교부 100%

의사 면허 규제의 또다른 문제는 재교부가 쉽다는 점이다. 의료법 65조에 따르면 설령 의료행위와 관련된 범죄가 입증돼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3년이 지나면 재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전문직에 대한 면허 재교부 기준은 까다로워야 하지만, 의료인의 경우 면허를 다시 발급받는데 사실상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권칠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0~2019년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은 75건이 접수돼 모두 승인됐다. 2020년까지 포함할 경우 103건 중 100건이 승인돼 재교부율이 무려 97%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재교부 심의가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수용해 올해부터 7인으로 구성된 재교부 소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심의가 좀 더 까다로워지기는 했지만, 28건 중 25건을 승인해 여전히 재교부율이 90%에 육박한다. 리베이트 수취,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 면허증 대여, 허위진료비 청구 등으로 면허가 취소됐던 의사들이 대부분 진료를 재개했다는 것이다.

 

사진=강병원 의원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강병원 의원실

◇ 21대 국회, 의료법 '어게인 2000' 가능할까

21대 국회에서는 의사 면허 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80석을 차지한 여당이 의료법 개정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다, 공공의대 논란 이후 의료계에 대한 여론이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의사 면허 취소 사유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는 특권의식이 강력범죄의 원인”이라며 “의사면허 결격사유를 20년 전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으며,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이 관련 법안 논의 시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달라고 요구하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 정서와 감정에 부합되는 뜻을 펼치겠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 또한 지난 6일 면허취소 후 재교부 받은 의료인이 다시 면허취소 행위를 할 경우 면허를 영구취소하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권 의원은 “면허취소 후 개전(改悛)의 정을 인정받아 재교부 받은 의료인이 면허취소 사유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국민 기만이자 의료인으로서 윤리의식과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의료법 개정안이 의료인의 윤리의식과 면허관리 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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