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 확산 빈도(1~3월). 자료=국제설사병연구소(ICDDR, B)
2020년 1~3월 국가별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 확산 빈도. 자료=국제설사병연구소(ICDDR, B)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지만, 전지구적인 백신·치료제 개발 노력과 방역조치 덕분에 일상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면에서 조용히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전염병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다. 바로 ‘인포데믹(Infodemic, 정보전염병)’이 그것이다. 인포데믹은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로, 가짜뉴스가 발달된 미디어를 통해 전염병처럼 확산되면서 큰 위험을 초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가짜뉴스는 평소보다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8월 국제설사병연구소(ICDDR, B) ‘미국 열대의학 및 위생저널(The American Society of Tropical Medicine and Hygien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로 인해 지난 1~3월 약 800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SNS 등을 통해 “메탄올을 마시면 코로나19가 치료된다”는 가짜뉴스를 접한 뒤 실제로 시도했기 때문. 논문에 따르면, 가짜 치료법을 믿은 잘못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5876명으로 이 중 60명은 증상이 악화돼 실명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는 방역조치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에는 소금물로 입을 헹구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는 가짜뉴스로 인해 수십명의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 은혜의강 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한 신자들의 입에 분무기를 통해 소금물을 뿌렸다가 수십명의 감염자가 발생한 것. 몇 차례 가짜뉴스로 홍역을 치른 이후에도 방역당국이 진단 결과를 조작한다거나, 코로나19의 위험성이 독감보다 적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 치료제 없는 '인포데믹', 가짜뉴스 면역력 길러야

이르면 연말 중 백신 개발이 기대되는 코로나19와 달리 인포데믹의 경우 마땅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다. 각국의 연구기관과 언론사들이 ‘팩트체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SNS를 통해 퍼지는 수많은 가짜뉴스들을 모두 검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우리 몸의 면역력을 길러 인포데믹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사실관계를 판별하는 눈을 기르고 그럴싸한 데이터를 늘어놓는 가짜뉴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읽어내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가 필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말 그대로 매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다. 다만 단순히 특정 형태의 매체에 보도된 기사를 해석하는 능력이 아닌, 모든 형태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메시지에 접근·분석·평가·비판·창조하는 능력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정보의 원천이 국가나 주요 언론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 등 개인으로 확장되고, 정보의 공유가 과거보다 빠르고 다양하게 이뤄지는 현재 다양한 방식의 의사소통 과정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함양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다.

지난 3월 소금물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는 가짜뉴스로 인해 경기도 성남시 은혜의강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 3월 잘못된 정보로 인한 인포데믹 현상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은 한 교회. 신도들 입에 소금물을 분무해 논란이 됐다.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세 살 아이에게도 효과

물론 비전문가인 일반인의 미디어 면역력을 키우는 것보다 전문적인 ‘팩트체커’를 길러내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국내 연구결과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명확한 ‘가짜뉴스’ 예방효과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송원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교수가 지난 3월 발표한 ‘청소년의 신문뉴스 활용교육(NIE) 효과’ 논문에 따르면, NIE를 받은 중·고등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해독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NIE를 받은 학생들은 기사에 나온 정보가 정확한지, 기사가 어떤 언론사에서 보도된 것인지를 확인하고, 기사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직접 추가정보를 찾아보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NIE를 받고 높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학생들은 정치사회적 참여 성향도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언제부터 가르쳐야 할까?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유치원에 다니는 영유아들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여대 아동학과 연구팀이 지난 2017년 평균연령 72개월의 유아 54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험에 따르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여부에 따라 미디어 이해도에 뚜렷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니메이션·광고 등 영상·이미지 텍스트를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받은 유아들이 그렇지 않은 유아들에 비해 이해능력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 

연구팀은 “유아의 해석적 이해 능력이 증진된 것은 텍스트 안의 단서와 숨은 의도를 탐색하도록 안내하고 질문하는 교사의 역할에 힘입은 바가 크다”며 “프레임과 컬러, 카메라의 위치, 샷의 순서, 음악과 이미지의 조합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유아의 문법적 이해 능력이 향상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자가 교육대상과 텍스트를 두고 비판적인 토의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교육대상 스스로 미디어를 해독하고 비평하는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뜻이다. 

◇ '인포데믹' 바이러스, 백신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가짜뉴스의 해악은 단순한 오해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가짜뉴스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나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코로나19과 악튼 팬데믹 상황에서는 인명을 해치는 극단적인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의 위험성을 경고한 사이풀 이슬람 ICDDR 연구원은 “소문과 편견, 음모론에 의해 촉발된 가짜뉴스가 과학적 지침보다 우선시될 경우, 잠재적으로 공중 보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가짜뉴스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중보건 체계를 포함한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봉쇄지침과 관련 가짜뉴스가 촉발한 ‘패닉 바잉(Panic-buying)’ 현상이나, ‘메탄올 치료법’ 가짜뉴스가 초래한 사망은 가짜뉴스에 대한 무관심이 낳은 수많은 불행한 사례 중 하나다. 미디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포데믹의 위험성은 더욱 높아지는 만큼, 이를 예방하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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