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유세 중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며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유세 중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며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20대 남성의 낮은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의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다. 실제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19~29세 남성의 문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불과 27%로 같은 연령대 여성(51%)보다 무려 24%포인트나 낮다. 

남성이 여성보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낮은 것은 5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공통된 현상이지만, 이처럼 격차가 심한 것은 20대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더욱 심각하다. 다른 연령대에서는 성별 지지율 격차가 4%포인트 미만이지만, 20대에서는 15%로 벌어진다. 

일각에서는 20대 성별 격차의 주된 원인으로 정부·여당의 성평등 정책을 꼽고 있다. 실제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대통령”, “페미정부”, “페미정당” 등의 표현이 심심찮게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평등 정책만으로 20대 남성의 정치적 입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기조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거센 이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페미 정부’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성안심주택이나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조롱하는 글들이 종종 게시되고 있지만, 성평등 정책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뉴스로드>는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주장하는 ‘페미 정부’라는 표현이 현실과 부합하는지 알아봤다.

 

자료=한국갤럽
20대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 추이.(단위: %) 자료=한국갤럽

◇ 文정부 성인지 예산, 규모는 역대 최고.

문재인 정부가 정말 ‘페미정부’인지는 성평등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배정했는지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 문재인 정부가 편성한 성인지 예산은 31조7963억원(3차 추경 기준)으로 전년 대비 25.1%(6조3760억원)나 증가했다. 이는 성인지예산제도가 처음 도입된 2010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액수다. 결산 기준 최고액 또한 문 대통령 취임 후인 2018년(35조1815억원)이다.

성인지예산제도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 자원이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배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성인지 예산 편성액은 연평균 31조6500억원으로 박근혜 정부(27조7900억원), 이명박 정부(10조6700억원) 대비 높은 편이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성평등에 많은 자원을 배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예산안인 2018년 예산안에서 성인지예산에 전체 국가 예산의 8.3%를 배분하며 성평등 공약 이행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성인지예산 편성률은 2019년 5.5%, 올해 5.8%로 취임 초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문재인 정부의 2018~2020년 성인지예산 편성률은 평균 6.53%로 이명박 정부(3.33%)보다는 높지만, 박근혜 정부(7.28%)에 비해서는 낮다. 

 

자료=용혜인 의원실
자료=용혜인 의원실

◇ '환승센터 구축'이 성인지 사업? 

성인지예산사업의 내실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지예산사업 성과목표 331개 중 달성된 목표는 239개로 달성률이 72.2%에 그쳤다. 이전 정부에 비해서는 소폭 상승한 수치지만 2011~2019년 전체 평균(70.3%)과는 큰 차이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성인지예산이 제대로 된 성평등 관련 사업에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예산안에서 성인지 대상사업으로 분류하기 부적절한 사업만 14건이 확인됐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는 ‘환승센터 구축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을 성인지 대상사업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두 사업 모두 불특정 다수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특정 성별에게 수혜가 집중되는 사업이 아닌 만큼,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용혜인 의원은 “성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된 지 11년이 됐는데, 아직도 예산 총량, 성과목표 수립 및 달성, 대상사업 발굴 등의 문제가 연례적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성인지 예산의 책임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 성인지 예산을 종합하는 역할만 할 뿐, 대상사업을 직접 발굴하는 등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文정부 초기에 비해 성평등 공약 이행률 미진

예산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초기 성평등 관련 공약들의 이행률도 미진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웹사이트 ‘문재인미터’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3주년인 지난 5월 기준 성평등 분야의 공약 중 완료된 것은 35건 중 2건(5.71%)에 불과했다. ‘지체’ 평가를 받은 항목은 16개(45.71%)로 총 10개 분야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노동 분야(35.62%)도 성평등 분야 다음으로 지체 평가 비율이 높았지만, 1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났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성평등 정책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문 대통령은 18명의 장관 중 6명을 여성으로 채우며 국무위원 중 여성 비율을 33%까지 끌어올렸다. 임기 내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공약 달성을 위한 초석을 다진 셈이다. 또한 이전 정부보다 증액된 성인지예산을 편성하고 각종 성평등 관련 사업을 추진하며 상대적으로 진보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낮은 성인지예산사업 달성률과 개선되지 않는 각종 문제점들, 성평등 공약 이행에 지지부진한 모습 등은 문재인 정부를 '페미 정부'라고 평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제시된 수치들로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여성친화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페미 정부'라는 20대 남성들의 비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거꾸로 된 현실인식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보다 적극적인 성평등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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