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시 지역화폐 REC를 사용하는 모습. 사진=스페인 REC
스페인 바르셀로나시 지역화폐 REC를 사용하는 모습. 사진=REC 바르셀로나

코로나19로 경제가 악화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한국 또한 두 차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위축된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등, 한시적이지만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효과를 거둔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소득 논의는 ‘가능성’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초래할 막대한 재정적 부담뿐만 아니라 지급 절차와 관련한 실무적 문제를 들어 기본소득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반박한다. 

실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인프라와 전자정부를 갖췄음에도 1·2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발생한 바 있다. 아직 전자정부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일본은 재난지원금 지급이 수개월이나 지연돼 엄청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전자정부는커녕 금융인프라도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은행계좌를 가지지 않은 사람도 많아 기본소득을 수령자에게 이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현금으로 지급하려니 신원 확인이 필요한데, 개인정보에 민감한 사회에서는 이 또한 걸림돌이다.

하지만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 절차의 실무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어떨까? 기본소득 찬성론자 중 일부는 신원 확인 및 개인정보 보호, 금융 계좌 개설 등 다양한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화폐를 제안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인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통해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실무적 난점을 배제하고 논쟁의 범위를 ‘재정부담’으로만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

실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22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한국은행이 연구·개발 중인 CBDC를 현장에서 실험해보기 위해, 디지털화폐를 활용해 지역적인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고 제안하며 “중국은 선전시에서 시민 5만 명을 추첨해 200위안(우리 돈 3만4천원)씩 디지털화폐를 지급하고 일상생활에 써보는 실험을 했다. 한국에도 디지털화폐를 이용해 실험을 해본다면 디지털화폐 기술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해외, 디지털 화폐 통한 기본소득 지급 실험 이어져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중앙은행이 전자적으로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 스웨덴처럼 현금의존도가 낮거나 우루과이·튀니지 등 지급결제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는 금융접근성 제고를 위해 이미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특히 신용 리스크가 거의 없고 지급결제 시스템을 유지·운용하는 비용이 낮은 데다, 통화정책으로서 효율성이 높고 내수진작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중앙은행에 직접 발행하고 자국 통화 등에 가치를 연동시키는 만큼 다른 암호화폐와 달리 변동성이 작은 것도 장점이다. 

특히, 용 의원이 예시로 든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경우 이달 들어 세계 최초로 디지털 화폐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추첨을 통해 선발한 5만명의 시민에게 1인당 200위안(약 3만4000원)의 ‘디지털 위안화’를 스마트폰 전용 앱으로 지급하고, 시내 3389개 상업시설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한 것. 

CBDC는 아니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발행한 지역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한 사례도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는 지난 2017년 12월부터 빈곤지역 1000가구에 2년간 매월 100~1676유로(약 22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실험 ‘비민컴(B-Mincome)’을 추진했다. 

다른 지역의 기본소득 실험과 다른 비민컴만의 특별한 점은 일부 가구에 대해 기본소득의 25%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발행한 지역화폐 REC(Real Economy Currency)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서 역외유출을 막고 지역내 상거래를 촉진하겠다는 전략이다. 

수사나 마틴 벨몬테 전 스페인 REC 수석 경제학자는 지난 9월 ‘제2회 경기도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며 “REC 도입 첫 해 지역 승수효과가 54%나 상승했다. REC는 효과적인 지불 수단일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를 강화시키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 CBDC 기본소득, 보안이슈 선결이 핵심

CBDC를 포함한 암호화폐 분야에서 한국을 선두그룹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도 비슷한 방식의 실험을 이미 시행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한 지자체들이 그 사례다. 

예를 들어 부산시의 경우 지역화폐인 ‘동백전’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수령하도록 했다. 동백전은 부산은행이 발행하는 지역화폐로, KT에서 개발·운영 중인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플랫폼 ‘착한페이’를 통해 공급되고 있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부산시민의 20%가 넘는 76만명이 동백전에 가입했으며, 발행 규모만 5000억원을 넘어섰다. 지역화폐 중 규모가 가장 큰 동백전을 통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향후 CBDC 기본소득 정책의 테스트베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CBDC를 통한 기본소득 지급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다수 남아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역시 ‘보안’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디지털화폐 연구소 소장은 지난 25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금융서밋 기조연설에서 “시장에 이미 가짜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이 출현했다”며 “지폐 시대와 마찬가지로 인민은행은 여전히 위조 방지 문제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만약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는 디지털 화폐가 해킹의 위험에 노출된다면 앞서 언급했던 장점이 모두 무효화될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기본소득 논의에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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