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 기업 생존 키워드로 부상, 환경 상생 등 다양한 가치 추구

글로벌 사회책임투자(SRI) 펀드 설정액 추이. 자료=유안타증권
글로벌 사회책임투자(SRI) 펀드 설정액 추이. 자료=유안타증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으로 인해 전지구적 위기가 발생하면서 투자업계에 ‘ESG’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보건·고용·환경 등 다양한 차원의 위험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소위 ‘착한 투자’로 불리는 ESG 투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한 투자결정을 뜻한다. 초기에는 주류, 무기 등 비윤리적 산업을 투자대상에서 배제하려는 동기에서 시작됐지만, 현재는 기후위기, 노동권, 성평등, 기업의 투명성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형태로 발전됐다. 이 때문에 ESG 투자는 ‘사회책임 투자(SRI, 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지속가능 투자(Sustainable Investment)’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ESG 투자, 기후 위기 성평등 등 다양한 가치 지향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고조되고 사회정의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재무적 성과와 함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ESG 투자는 이미 해외에서는 ‘대세’가 된 지 오래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리뷰(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Review)에 따르면, 전 세계 ESG 투자 규모는 지난 2018년 기준 약 30조7000억 달러로 2012년(13조3000억 달러)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났다. 

ESG 투자 트렌드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파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ESG 관련 펀드 자산은 지난 6월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지난 4~6월 ESG 펀드에 유입된 자금 규모만 711억 달러에 달한다. 코로나19로 증시가 안개 속에 빠지면서 주식형 펀드에 유입되는 자금이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ESG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투자자의 경우 비재무적 성과까지 고려한 투자결정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ESG 펀드의 수익률은 다른 주식형 펀드보다 높은 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폭락장으로 전 세계 투자자들이 공포에 떨었던 올해 초에도 ESG 펀드는 일반 펀드와 달리 수익을 유지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 시장 전체 ESG 펀드의 60%는 S&P500지수 수익률을 초과했다. 또한, ESG 펀드 대부분이 추종하는 MSCI World SRI 지수도 2~4월 기준 MSCI World 지수 대비 3%p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3~5월 국내 ESG 펀드(ETF 포함)의 수익률은 코로나19 충격으로 –9.41%를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와 주식형 펀드는 각각 –12.94%, -12.23%의 수익률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선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기로 인한 하락장에서 ESG 투자의 리스크 관리가 빛을 발한 셈이다.

◇ ESG 투자, 위기 속 빛나는 리스크 관리

그렇다면 왜 ESG 투자는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면서도 준수한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는 걸까? 이는 ESG 투자가 단순히 ‘착한’ 투자가 아니라 기업의 리스크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ESG 투자의 핵심 요소인 환경, 인권, 투명성 등은 기업의 무형자산이자 기업의 평판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환경 오염, 차별적 사내 문화, 오너일가의 비리 등으로 ESG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잠재적 리스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업에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이 점차 높아지는 만큼, 이 같은 리스크로 인해 기업의 평판이 나빠지면 예전보다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최근 인권 문제로 전 지구적 보이콧을 촉발한 디즈니의 영화 ‘뮬란’은 ESG 투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사례 중 하나다. 디즈니는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으로 문제가 된 지역에서 영화를 촬영하면서 해당 지역 공안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영화 크레딧에 남겼다가 인권 문제를 등한시한다는 영화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는 소비자들이 상품의 가치와 함께 기업의 윤리성을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ESG 지표가 나쁜 기업은 언제 어디서 소비자들의 비판에 직면해 경영 위기에 빠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환경적 요인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은 지난 2015년 배출가스 조작사건으로 인해 약 147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고, 한때 250유로를 넘었던 주가는 100유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탄소배출 기업을 투자대상에서 배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ESG 투자전략을 선택한 투자자라면 이 같은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국내 ESG 펀드. 자료=자본시장연구원
국내 주식형 ESG 펀드 수 및 순자산 규모 추이. 자료=자본시장연구원

◇ 국내 ESG 투자, 글로벌 수준과 격차 커

ESG 평가를 통해 잠재적 위험성이 큰 투자대상을 배제하는 ESG 투자전략은 국내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금투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설정된 ESG 펀드 규모는 지난 2월 기준 3869억원으로 2년 전보다 266.6%나 급증했다. 수익률도 양호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ESG 테마에 속한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3.68%로 주식형 펀드(12.08%)보다 높았다. 

하지만 아직 글로벌 ESG 펀드 규모와는 격차가 큰 데다,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에 비해 ESG 수준이 높지 않다는 점은 문제다. 자본시장연구원 박혜진 연구위원이 지난 8월 발표한 “국내 ESG 펀드의 ESG 수준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ESG 펀드와 주식형 펀드의 포트폴리오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연구위원은 모닝스타의 ESG 평가방법론을 사용해 펀드별로 평균 포트폴리오 ESG 점수를 산출했는데, 국내 ESG 펀드(51.71점)와 일반주식펀드(51.47점)는 거의 동일한 점수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ESG 펀드가 ‘ESG’라는 간판만 달았을 뿐, 실질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투자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직 질과 양 모두 부족한 국내 ESG 투자가 세계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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