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국 비영리교육단체 커먼센스미디어
미국 교사들이 아이들과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미국 비영리교육단체 커먼센스미디어

향후 4년간 미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등 두 후보를 둘러싼 가짜뉴스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 미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GMF)에 따르면, 이번 대선을 앞두고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허위 콘텐츠를 게시하는 웹사이트에 방문하고 링크를 공유하는 경우가 지난 2016년 대선 때보다 102%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미디어 시장의 규모가 크고 다양한데다 혁신적인 채널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유통되는 국가인 만큼, 가짜뉴스로 인한 부작용도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혐오심을 부추기는 허위 콘텐츠가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

다만 미디어산업의 선진국인 만큼, 미국은 오래전부터 미디어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1960년대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대폭 확대해 수많은 콘텐츠에 담긴 허위 정보와 교묘한 조작, 편향된 시각 등을 걸러낼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고 있다.

◇ ‘법제화’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 기반 다지는 미국

미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특별한 점은 무엇보다도 법적인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미디어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미디어가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차 확대되면서, 미국의 여러 주정부는 최근 들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예를 들어, 워싱턴주에서는 지난 2017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의무를 법제화했다. 디지털 시민성을 고양하고 미디어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데 초점을 맞춘 이 법안은 공교육 부문 교육감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관련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주내 각 학교를 지원할 의무를 명시했다. 실제 워싱턴주는 단순히 재정과 인력 등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성취 기준을 설정하는 한편, 학교에 따라 적합한 교육 과정을 수립하고 자료를 선별하는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전반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넘어 미디어 폭력 등 특정 부작용에 초점을 맞춘 법안도 있다. 지난 2016년 뉴저지주 상원에서 승인된 미디어 리터러시 법안은 6~8학년의 핵심 학업성취기준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법안은 관련 커리큘럼에에 소셜미디어의 무책임한 활용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필수적으로 포함시키고, 주 교육부도 미디어 폭력에 대한 교수법을 각 학교에 제공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여러 주 정부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관련 법안을 제정했거나 추진 중이다. 이 법안들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사이버불링, 청소년의 섹스팅 등 미디어의 잘못된 활용으로 인한 비윤리적 행위를 예방하고 교사·학부모·전문가 등 다양한 집단을 대표하는 자문위원회를 통해 세부적인 교육 계획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수립하도록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6년 제이 인슬리 워싱턴주지사(가운데)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리터러시나우
2016년 제이 인슬리 워싱턴주지사(가운데)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리터러시나우

◇ 프로그램 개발부터 법제화까지, 민간이 주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미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민간단체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CML(Center for Media Literacy), NAMLE(National Association for Media Literacy Education), 미디어 에듀케이션 랩(Media Education Lab) 등 다양한 민간단체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미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대표하는 기관인 CML은 교사와 학부모, 학생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계간지 ‘Media & Values’를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와 비판적인 시각을 전달하고 있다.

2008년 공식 출범한 NAMLE는 미국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주도하는 가장 큰 단체 중 하나다. NAMLE는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및 자료를 제공하는 한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하는 데까지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학술지를 출간해 전문적인 미디어 관련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

미디어 에듀케이션 랩은 로드아일랜드 대학교가 운영 중인 학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기관이다. 이 기관은 대학 내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관련한 학제간 연구를 지원하는 한편, 대학교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 에듀케이션 랩'의 설립자 르네 홉스(Renee Hobbs) 로드아일랜드대 미디어교육 연구소장 2018년 미디어 리터러시 위크에서 음모론과 관련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 에듀케이션 랩
'미디어 에듀케이션 랩'의 설립자 르네 홉스(Renee Hobbs) 로드아일랜드대 미디어교육 연구소장 2018년 미디어 리터러시 위크에서 음모론과 관련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 에듀케이션 랩

◇ 민-관 상호협력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선순환

이 같은 민간단체들이 효율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정부와의 원활한 상호 협력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NAMLE의 경우, 미 교육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다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관련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NAMLE는 2015년부터는 ‘미디어 리터러시 위크’ 행사를 진행해 교사·학부모·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다양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전략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단체 ‘미디어 리터러시 나우(Media Literacy Now)는 주 정부가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단체들이 더 나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정부에 법제화를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교육기관과 민간단체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국내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정부-민간 협력 모델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