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가을에
  • 김용국(시인)
  • 승인 2020.11.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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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razade_1-(페인팅)ceramic,100x100cm
Scherazade_1-(페인팅)ceramic,100x100cm

 

낮게 낮게 떨어져 내리는 게 없다면 
어찌 하늘이 높을 수 있겠는가.

조금은 낙엽처럼 내려
좀 더 먼 곳을 보자꾸나 
좀 더 높은 곳을 보자꾸나.

가을은 작은 창문 밖에서도 
서성이는데
지금은 낮게 더 낮게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한 번은 이별을 닮은 
쓸쓸한 등으로 
다시 한 번은 추억의 창고에 
등불을 켬으로
가을에 잠시 머물 수 있을 것이나,

구름은 북풍에 기대어 흘러가고
세월은 회한에 기대어 사라진다.

그대가 가르쳐준 노래를
오늘은 하릴없이 중얼거리는데,

가을엔 뜨거운 노래도 
쉽게 차가워지는 법.

그대는 가을의 어디쯤에 
내리고 있을 것이니
나도 그대의 어디쯤을 찾아 
가을의 낮은 계단을 밟고 내려갈밖에.

아침으로 운동 삼아 산에 오르면 오가는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써 긴 소매 옷으로 갈아입었고, 오솔길은 바람만 불면 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귀를 간질입니다. 눈부시게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오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뭇잎처럼 펄럭이는 하늘을 멀찌감치 바라봅니다. 미묘하게 변해가는 가을의 색과 냄새, 가을이 만들어주는 길들을 마음에 담아놓습니다. 

‘어디가 최종 종착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만은 알 때가 있다. 그럴 땐 떠날 수밖에. 어디서든지 눈을 부릅뜨고 킁킁대며 생을 향해 나아가면, 삶은 살아진다는 거, 열정을 놓치지 않고, 그것이 숨 쉬도록 펼쳐두면, 언젠가는 만개하고 만다는 거.’-『월경 독서越境讀書/목수정 지음, 생각정원』

나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떠나야할 때가 아닌가. 떠나기에 너무 좋은 때가 아닌가.

‘그대는 가을의 어디쯤에 / 내리고 있을 것이니 / 나도 그대의 어디쯤을 찾아 / 가을의 낮은 계단을 밟고 내려갈밖에.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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