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새벽 온라인 커뮤니티에 "커피믹스 빌런녀"라는 제목의 가짜뉴스가 확산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11월 5일 새벽 온라인 커뮤니티에 "커피믹스 빌런녀"라는 제목의 가짜뉴스가 확산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커피믹스 빌런녀’라는 게시글이 확산되고 있다. 이 글에는 한 여성이 믹스커피 몇 봉지를 자신의 가방이 몰래 챙겨 넣는 그림과 함께 직장인 A씨가 회사 비품인 믹스커피를 빼돌리다 경찰에 체포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담겨 있다.

이 글은 지난 5일 새벽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커피믹스 빌런녀.jpg"라는 제목으로 거의 동시에 올라왔다. 문제는 이 글이 전혀 관계없는 그림과 글을 엮은 교묘한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 7년전 기사, 지금 다시 화제된 이유는?

해당 글에 소개된 사건은 7년 전인 지난 2013년 2월 8일 다수의 일간지에서 보도됐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직장인 A씨(32)는 2011년 1월 5일부터 2012년 7월 31일 사이 인천 남동구의 직장에서 믹스커피 1840봉지(시가 3400만원)를 훔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A씨는 훔친 커피를 도소매점에 절반 가격으로 되팔아 돈을 챙겼는데, 경찰에는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했다”며 범행 동기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일간지들은 대부분 기사제목에 A씨의 성별을 명시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서 믹스커피 훔친 30대 입건”라는 제목을 사용했으며, 다른 일간지들도 “‘생활비 마련하려’ 직장서 믹스커피 1840봉지 훔쳐”(조선일보), “회사 믹스커피 훔친 30대 직장인 입건”(매일일보) 등의 제목을 붙였다. 

반면 5일 확산된 게시글들은 이 사건에서 A씨의 성별이 핵심적인 요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커피믹스 빌런녀”, “회사에서 믹스커피 훔쳤다고 입건된 여직원” 등 성별을 강조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절도범의 성별은 정말 여성이었을까? <뉴스로드>가 찾아본 바 에 따르면, 경기일보의 기사에서 A씨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일보는 11일 해당 사건을 전하는 기사에서 “생활비 때문에 커피믹스 훔친 30대남(男) 입건”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기사 본문에서도 A씨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자료=경기일보
자료=경기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 엉뚱한 기사에서 그림 가져와 “절도=여성” 오해 퍼뜨려...

게시글에 포함된 그림도 믹스커피 절도사건 관련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지난 2013년 12월 3일 세계일보의 “탕비실서 커피믹스 한 움큼… 직장인들의 ‘소확횡’”이라는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올해 초 한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박모(27·여)씨는 요즘 남 몰래 ‘작은 일탈’을 즐기고 있다. 매일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면 탕비실에 들어가 커피믹스를 한 움큼씩 챙기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직장 스트레스를 회사 비품을 소량 훔쳐 해소하는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행태를 소개하고 있다. 여성이 믹스커피를 낱개로 챙기는 그림은 기사 중단에 배치돼있다. 이 그림은 이틀 뒤 “‘소확횡’ 하는 직장인… 횡령죄 적용되나 들여다보니”라는 기사에도 사용됐다.

결국 5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진 글은 무려 7년 전 기사를 악의적으로 짜깁기한 가짜뉴스였다. 굳이 “커피믹스 빌런녀”처럼 성별을 강조한 제목을 사용하고, 여성이 믹스커피를 훔치는 그림을 덧붙여 마치 여성이 직장 내 비품을 자주 훔친다는 듯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자료=세계일보
2018년 12월 3일 세계일보 기사 중단에 배치된 그림이 엉뚱한 여혐 가짜뉴스에 활용되고 있다. 자료=세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 재활용 되는 가짜뉴스, 여성혐오 키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기사가 11월 5일 처음 화제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기사는 몇 년 전부터 “믹스커피 훔쳤다고 회사가 직원 고소” 등의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러 차례 게시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25일에는 오늘의 유머, 루리웹 등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 해당 사건을 소개한 뉴시스의 기사 본문이 게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11월 5일 확산된 글과는 달리 당시에는 기사를 인용한 게시글의 제목이나 본문에 절도범의 성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여성이 믹스커피를 훔치는 그림 또한 포함되지 않았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해당 기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개됐으나 성별을 강조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여자주인공이 탕비실에서 믹스커피를 훔치는 영상을 함께 올린 게시글이나, 해당 장면을 언급한 댓글은 종종 발견됐다.

기사 본문에 여성이 믹스커피를 훔치는 그림까지 덧붙인 ‘가짜뉴스’가 처음 발견된 것은 올해 초다. 지난 1월 31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탕비실에서 커피믹스 훔쳐간 사원 고소한 회사”라는 제목으로 그림과 함께 기사 본문이 인용됐다. 이달 5일 올라온 글은 제목까지 성별을 강조하는 식으로 바꿔 과거의 글을 재활용한 중고 가짜뉴스인 셈이다.

사진=루리웹 갈무리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가짜뉴스, 팩트체크해도 시간 지나면 재활용

안타까운 점은 누리꾼들이 올해 초 이미 해당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를 했다는 점이다. 올해 1월 31일 가짜뉴스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자, 루리웹의 한 이용자가 그림의 출처가 2018년 세계일보 기사임을 밝힌 글을 올린 것. 하지만 이 가짜뉴스는 그 후 10개월이 지나 더욱 노골적인 ‘여혐’ 제목을 달고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은, 이 가짜뉴스에 달린 댓글은 대부분 사건의 특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여성혐오적인 내용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의 가짜뉴스가 좀 더 노골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재활용됐을 때 이를 접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이 가짜뉴스는 중요한 정치·경제·안보 등의 이슈와는 관련 없는 소소한 사건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가짜뉴스의 사회적 파급력이 크지는 않겠지만, 동시에 엄격한 ‘팩트체크’의 잣대를 적용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팩트체크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소소한’ 가짜뉴스가 누적된다면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혐오감을 확산시킬 수 있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팩트체크를 해도 잊혀질 때쯤 다시 같은 내용의 가짜뉴스를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