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조 바이든 선거캠프 홈페이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조 바이든 선거캠프 홈페이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이 과거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새로 출범하는 바이든 정부가 오바마 정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제기된다.

◇ "김정은은 불량배"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바이든 당선인은 과거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을 맡았던 만큼, 당시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 익숙한 인물이다. ‘전략적 인내’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북한의 도발을 무시하고 경제제재 등을 통해 압박하며 상황 변화를 기다리는 방식을 뜻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전략적 인내’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며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시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실패했다”며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을 통해 북미 협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을 폈다. 이후에는 실무진을 제치고 자신이 직접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는 등, 북핵문제 해결의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반면 바이든 당선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독재자’, ‘폭군’ 등으로 지칭하며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실제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10월 22일(현지시간) 열린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불량배(김 위원장)를 좋은 친구라고 말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북한은 손쉽게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대북정책을 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미국 바이든 당선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탑다운(Top-down) 방식의 직접협상보다는 실무차원에서 세부사항을 논의한 후 정상 간에 최종합의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텀업 방식은 탑다운 방식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다. 대북 라인을 구성하고 세부적인 사항을 실무진 차원에서 조율한 뒤에야 실질적인 협상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협상이 지연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북한이 재차 도발에 나선다면 북미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 트럼프의 탑다운 협상, 정말 효과적이었나?

반면 바이든 당선인이 이미 실패한 정책인 ‘전략적 인내’를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12일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과 그의 참모들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전략적 인내’의 실패를 직접 목격한 이들”이라며 “참모들 중 여러 명은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마지막 2년 동안 ‘전략적 인내’로부터 거리가 먼 정책을 펼치도록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미한정책국장 또한 VOA를 통해 “‘전략적 인내’로의 회귀라는 어떠한 징후도 보지 못했다”며, “오바마 행정부 때와 비교해 현재 북한 핵 위협의 특성과 범위가 바뀌었기 때문에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텀업 방식의 협상에 대한 우려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진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협상을 주도하는 탑다운 방식을 통해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상회담으로 높아진 기대감 만큼 북핵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11일 ‘세종논평’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 집권 4년 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직접 접촉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진전 가능성을 보인 것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부터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에 이르는 1년 정도의 기간에 불과하다”며 “2019년 하노이 이후, 판문점에서의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실무협상을 이야기 했고, 그 결과 2019년 10월 스톡홀름 협상이 열렸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을 맺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당선인과 김 위원장이 서로를 ‘불량배’, ‘미친 개’로 부르며 날을 세운 것도 북미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요인이 되기는 어렵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로켓맨’,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까지 말했지만, 이 같은 폭언이 정상회담에 장애물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 바이든과의 대화, 북한이 먼저 나설 가능성은?

바이든 당선인은 전략적 인내의 탄생뿐만 아니라 실패까지 지켜본 인물이다. 게다가 과거보다 미중 갈등이 훨씬 더 악화된 현재,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야 하는 ‘전략적 인내’를 재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북한이 먼저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면 북미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우 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탑다운 접근법이 북한과의 협상이나 관계 진전을 이끌었다기 보다, 북한이 협상에 나오겠다고 한 부분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진 주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우 센터장은 이어 “북한이 협상을 하겠다고 할 경우, 바이든이 김정은에 대해 무슨 단어를 사용했건, 미국에 대북 라인이 갖춰지지 않았건, 미국은 어떻게든 협상을 이끌어 낼 팀을 만들어 보낼 것”이라며 “그렇게 쓸 수 있는 인재의 풀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 보다 훨씬 많다”고 덧붙였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새 내각을 구성하고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시기 동안 북한의 도발이 재개된다면 대화의 창이 닫힐 위험도 있다. 이정철 숭실대학교 교수는 “미국이 새 정책 관료를 임명하고 대북정책 검토를 진행하는 내년 7월까지의 ‘선의의 무시’ 기간에 나타날 정책 공백에 대한 불만으로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는 한국 금융·외환시장 불안,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한국정부가 한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선제적인 평화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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