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대표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사진=국회의안정보시스템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대표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사진=국회의안정보시스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 진행되고 있는 법 개정 논의가 미궁에 빠졌다. 정부는 헌재의 판결을 반영해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15~24주에는 임부의 건강 및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종교단체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은 정계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낙태죄 조항을 전면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비교적 낙태죄 이슈에 소극적이었던 국민의힘도 정부안보다 보수적인 내용을 담은 법안을 내놓은 것. 

앞서 지난 13일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태아의 심박동이 존재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낙태 절차 등을 규정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조해진 의원안은 태아의 심장박동이 확인되는 6주까지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고, 10주까지는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임신한 여성의 사회·가정생활을 불가능하게 할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20주까지는 임부의 건강과 성폭행 피해를 고려해 처벌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조 의원안은 정부안(14~24주)보다 낙태 허용기간을 최대 8주 단축한 법안이다. 조 의원은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태아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온전한 몸체로 꺼낼 수 있으며 산모 신체에도 손상을 가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시술이 가능한 때가 10주까지라는 자문을 받았다”며 허용기간을 10주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보수적 여성단체와 종교단체, 학부모단체 등은 조 의원안이 ‘생명윤리의 마지노선’이라며 환영하는 모양새다. 바른인권여성연합, 케이프로라이프, 2020낙태합법화를 막기 위한 학부모연합 등 시민단체는 1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의원안에 대해 “태아의 생명과 엄마의 결정권을 최대한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최소한 심장박동을 근거로 생명을 인식하는 보편적 기준에도 부합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의 주별 낙태관련 법안 현황. 초기낙태금지법안 대부분이 주 법원 및 연방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자료=국가생명윤리정책원
미국의 주별 낙태관련 법안 현황(2019년 6월 기준). 2019년 통과된 것으로 표기된 초기낙태금지법안 대부분이 주 법원 및 연방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자료=국가생명윤리정책원

◇ 미국, ‘심장 박동 법안’ 대부분 퇴짜

조 의원안과 같이 태아의 심장 박동을 기준으로 낙태 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심장 박동 법안’의 발의는 해외에서 먼저 시도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다수의 주에서 임신 초기 일정 시점이 지난 후 낙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가장 보수적인 앨라배마주의 법안은 임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시점에서도 낙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이지애나주의 경우 6주 이내의 낙태는 처벌하지 않지만, 그 이후로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의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각 주에서 발의된 심장박동 법안들은 실제로 시행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이 법안들은 대부분 주 법원 및 연방법원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고 철회됐다. 앨라배마주 법안의 경우 발효를 16일 앞둔 지난해 10월 29일(현지시간) 연방지방법원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루이지애나주의 법안은 “의학적 이득이 없으며 여성들의 임신중절을 위한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았다. 판결 당시 미국 연방대법원의 구성은 보수 성향 5명, 진보 성향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돼있었지만,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반대의견에 힘을 실었다.

조 의원안과 가장 유사한 것은 조지아주의 법안으로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지만 임부의 생명이 위태롭거나 성폭행,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는 예외로 했다. 다른 주의 법안보다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주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조지아주 법원은 지난 6월 13일 “검토 결과 낙태금지법의 목적이 '태아의 행복(well-being) 증진'이라는 주 정부 측 주장을 기각한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미국 사법부가 ‘심장 박동 법안’에 대해 엄격한 반대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47년 전인 1973년 ‘로대웨이드(Roe vs Wade)’ 판결 때문이다. 당시까지 미국 대부분의 주는 임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3년 낙태죄가 수정헌법 14조에 위배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당시 대법원은 임신 3개월까지는 임부의 독자적인 결정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고, 3~6개월까지는 의료진의 판단을 반영해 임부에게 낙태 여부를 선택하도록 했다.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해진 의원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기본소득당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해진 의원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기본소득당

◇ 심장 박동 법안, 여성의 생명도 지킬 수 있을까?

심장 박동 법안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재생산권 중 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측은 여성의 권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실적인 한계를 반대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여성단체 등이 심장 박동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태아의 심장박동이 확인되는 임신 6주까지 임신 사실을 알아채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생리가 불규칙한 경우 조 의원안이 제시한 10주의 기간이 지나도 임신 여부를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낙태죄를 존치하고 낙태 시술을 음성화하면 오히려 여성의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인공임신중절(낙태)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법적으로 낙태가 금지된 경우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낙태를 시도하거나 비숙련자에게 낙태 시술을 받게 될 위험이 있다”며 “낙태죄는 여성의 선택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안전한 시술을 받을 가능성은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루마니아는 낙태금지법이 시행된 1966년 이후 모성사망률이 이전 대비 8배 가까이 폭증했으나, 1989년 해당 법이 폐지되자 1년 만에 사망률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국내 여성계가 조 의원안에 대해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의료진이 여성의 낙태 시술 요청을 거부할 권한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입법안과 마찬가지로 조해진 의원 법안엔 의사 진료거부권이 명시돼있다”며 “유럽에서는 의사 진료거부권으로 인해 죽는 여성들이 발생하고 유럽 전역으로 ‘낙태 여행’을 떠나야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가 2018년 임신 12주 이후의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도록 법률을 개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012년 한 여성이 태아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고 낙태 시술을 받으려 했으나, 병원에서 거부당한 후 패혈증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한 것. 이후 아일랜드에서는 숨진 여성을 추모하며 법 개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낙태죄를 규정한 헌법 조항이 35년 만에 삭제됐다. 

한편 조 의원안은 조만간 정부안과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이은주 정의당 의원안,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돼 함께 심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낙태죄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 속에서 국회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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