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는 생산방식에 따라 화석연료를 사용한 회색수소, 회색수소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청색수소, 수전해기술을 사용한 녹색수소로 분류된다. 자료=세계에너지협의회(WEC)
수소는 생산방식에 따라 화석연료를 사용한 회색수소, 회색수소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청색수소, 수전해기술을 사용한 녹색수소로 분류된다. 자료=세계에너지협의회(WEC)

수소에너지는 탄소 ‘제로’ 시대를 열기 위한 대안적인 청정에너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장과 운송에 드는 기술적 문제와 함께 경제성과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도 해결해야 실질적인 상용화 단계로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수소에너지가 가진 근본적인 딜레마는 따로 있다. 바로 수소에너지가 탄소배출량 ‘제로’의 무공해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화석연료와 달리 수소에너지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별다른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 실제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소량의 물과 질소산화물 외에는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문제는 수소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수소 생산과정에서는 청정에너지라는 찬사가 무색하게 상당한 규모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는 아직 수소에너지가 생산과정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 회색 수소와 녹색 수소

수소경제 전문가들은 흔히 수소가 회색과 청색, 녹색의 세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세 가지 색깔 구분은 수소의 생산 방식에 따른 것이다. 녹색 수소는 물을 분해해 만든 '수전해 수소'를 말하며, 회색 수소는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되는 수소를 뜻한다. 석유화학 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수소를 수집한 ‘부생수소’, 천연가스를 고온·고압의 수증기로 처리한 ‘개질수소’가 회색 수소에 속한다. 청색 수소는 회색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제거해 배출량을 줄인 경우를 뜻한다. 

그렇다면 왜 청정에너지인 수소를 생산하는데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석유, 석탄처럼 자연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1차에너지와 달리, 수소는 자연에 화합물 형태로 존재해 따로 분리과정을 거쳐야 하는 2차에너지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에너지 효율을 고려하면 물을 분해해 만든 녹색 수소는 아직 상용화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재 생산 중인 수소의 대부분은 회색 수소다. 현대차증권이 지난 3월 공개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수소생산량의 48~50%는 천연가스 수증기 개질, 30%는 정유 및 화학 부문의 부생수소, 18%는 석탄가스화(주로 중국) 등 화석연료에서 생산된다. 반면 수전해 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2~4% 정도다. 

문제는 회색 수소 때문에 치러야 할 환경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회색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이산화탄소가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수소 1t을 생산하는데 약 10t이 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분리해내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양과 거기에 들어가는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배출되는 양을 모두 더한 수치다.

◇ 수소경제의 딜레마, 재생에너지와 공생으로 해결

이상적으로는 물을 전기분해해서 만드는 녹색 수소가 가장 완벽한 무공해 에너지이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녹색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에너지 설비의 효율이 낮을 경우 오히려 개질수소보다 더 환경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소에너지가 대안적인 무공해 에너지가 되려면 다른 재생에너지와의 공생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수소를 만들어내는데 들어가는 화석연료의 비중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실제 한화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미국의 수소트럭업체 니콜라와 협업을 선언했을 당시에도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니콜라가 건설하는 수소충전소에 한화에너지가 태양광 발전설비를 공급해, 수소의 생산과 저장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울프 보셀 박사가 2006년 발표한 논문에 나온 도표. 재생에너지를 그대로 배터리에 충전한 경우와,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한뒤 이를 통해 다시 전기를 충전한 경우를 비교했다. 이후 발전된 기술력을 고려하면 이 도표가 현재에도 맞다고 보기는 어렵다.
울프 보셀 박사가 2006년 발표한 논문에 나온 도표. 재생에너지를 그대로 배터리에 충전한 경우와,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한뒤 이를 통해 다시 전기를 충전한 경우를 비교했다. 이후 발전된 기술력을 고려하면 이 도표가 현재에도 맞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료=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 매킨지 보고서 "향후 10년간 수소 원가 약 50% 절감"

물론 여전히 모든 의문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해 다시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경우, 환경오염은 줄일 수 있겠지만 굳이 ‘전기→수소→전기’라는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칠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실제 유럽 퓨얼셀 포럼(EFCF)의 창립자인 독일의 울프 보셀 박사는 지난 2006년 발표한 “수소경제는 말이 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전혀”라고 자문자답한 바 있다. 그는 논문에서 ①재생에너지를 통해 수소를 생산한 뒤 이를 다시 연료전지로 만들어 수소차를 운행하는 경우와 ②재생에너지로 직접 배터리를 충전해 전기차를 운행하는 경우를 비교했는데, ②가 ①보다 세배 이상 높은 효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보셀 박사의 주장은 수전해 기술이 현저하게 발전한 현재 기준으로는 틀린 부분도 있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저장·운송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수소경제의 영역이 넓어져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수록 보셀 박사가 우려하는 ‘비효율’의 문제는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 하락에 따른 수전해 비용 절감 ▲수소 인프라 확대에 따른 공급가격 절감 ▲수소경제 관련 산업분야의 성장에 따른 연료전지시스템 원가 절감 등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약 50%의 수소원가가 절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가능성은 수소를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닌 에너지의 저장매체로 활용하는 것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원할 때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간에 전력이 과잉생산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잉여전력을 저장했다가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다시 사용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여기에 수소를 활용할 수 있다. 

실제 수소에너지저장시스템(HESS)는 다른 방식보다 전력저장 효율이 낮다는 문제가 있지만, 대용량의 전력을 장기간 손실 없이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사용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서 과잉생산된 전력을 수소 형태로 저장했다가, 전력수요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수소경제의 성장은 다른 재생에너지의 성장과 따로 떼어볼 수 없다. 수소경제의 단점인 오염문제를 재생에너지가 해결하고,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전력생산의 변동성을 수소경제가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바람대로 수소에너지 기술의 발전이 회색 수소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녹색 수소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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