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아동인권·미혼모·한부모 단체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보호출산법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미혼모협회 아임맘
11월 25일 아동인권·미혼모·한부모 단체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보호출산법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미혼모협회 아임맘

지난 11월 27일 전남 여수의 한 가정집 냉장고에서 생후 2개월 된 영아의 시신이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망한 영아가 태어난 것은 2018년으로 이미 2년 동안이나 냉장고 안에 버려져있었다는 사실이다. 친모는 법적인 미혼모로 친부로부터 양육비 등의 지원도 받지 못했고,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사망한 아이를 냉장고 속에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경찰이 밝힐 일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영아 유기·사망 사건은 언제까지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국가가 아니라 친부모에게 전가시킬 것이냐는 질문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특히 비혼 출산을 터부시하고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의 부담이 전가되는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들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 출생신고를 하고 홀로 아이를 키울 결심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출생신고를 통해 국가의 보호망에 들어와야 할 아이들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사태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실제 백해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2019년 10년간 총 1272건(연평균 127건)의 영아유기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 김미애 의원, 임산부 익명성 보장하는 보호출산법 발의

이 때문에 사회경제적 이유로 출생신고를 망설이는 미혼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국가가 양육의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임산부가 자신의 신원을 숨긴 채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비밀출산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일 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 바로 비밀출산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사회·경제적 곤경에 처한 임산부가 상담기관을 통해 원가정 양육 및 보호출산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상담 후 보호출산을 원하는 임산부는 개인정보를 숨긴 채 의료기관에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출생신고는 관할 지자체장이 하도록 하고, 친부모의 개인정보는 향후 아동이 열람을 요구할 경우를 대비해 ‘출생증서’의 형태로 아동권리보장원에 보관하기로 했다. 

비밀출산, 또는 익명출산 등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이미 해외 몇몇 국가에서는 시행 중인 제도다. 독일의 경우 ‘신뢰출산’ 제도를 통해 임산부가 신원을 감춘 채 출산할 권리를 보장하며, 태어난 아이가 만 16세가 되면 자신의 출생 관련 서류에 대한 열람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아이의 알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또한 익명 출산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 친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김 의원은 “현행법으로는 급증하는 아동 유기를 막을 방법이 없고 처벌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여성이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보호출산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보호출산법을 발의한 김미애 의원. 김 의원은 "현재로서는 보호출산이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미애 의원 페이스북
보호출산법을 발의한 김미애 의원. 김 의원은 "현재로서는 보호출산이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미애 의원 페이스북

◇ 시민단체 엇갈린 반응, 왜?

친부모, 특히 미혼모의 부담을 덜고 영아 유기의 위험을 예방하는 좋은 취지의 법안이지만 의외로 관련 시민단체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오랫동안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며 유기된 영아들을 보호해온 ‘주사랑공동체’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무조건적인 ‘출생신고제’ 강제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유기되거나 사망했다”며 “곤경에 처한 임산부의 개인정보를 익명으로 국가가 관리하고, 태아의 건강과 생명을 공적 의료체계 안에서 지켜주며, 출산 후 생모의 사회 복귀와 아이의 새로운 가정으로의 안착을 공적 체계 안에서 안전하게 보장하는 생명보호법이 김 의원의 보호출산법”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미혼모 단체 등에서는 오히려 보호출산법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보호출산법이 오히려 미혼모에게 입양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강요할 수 있으며, 태어난 아이의 알 권리도 침해할 수 있다는 것. 미혼모·한부모 단체 및 아동인권 단체들은 지난 25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출산제는 자녀를 출산한 여성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아니고 출생기록 은폐로 부모와 자녀의 확실한 분리를 만드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녀를 은폐하고 분리하는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될 때까지 임신초기부터 많은 고민을 했을 여성에게 우리 사회는 아직 이들을 만나고 지원하는 위기임신출산지원체계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라며 “정부가 노력해야 할 것은 임신초기상담부터 지원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위기임신출산지원체계의 구축이며, 이를 하지 않은 채로 보호출산제만을 도입하는 것은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어 있던 여성에게 극단적인 선택지만을 남겨놓고 이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 미혼모·한부모 단체, "보호출산법 보다 출생통보제가 우선"

시민단체들이 보호출산법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법안의 취지 때문이 아니라, 법안이 영아 유기 문제에 대한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보호출산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상담기관을 찾아온 임산부와 아이들만 국가의 안전망에 들어올 뿐, 상담기관을 찾을 용기도 내기 어려운 경우는 여전히 안전망 외부에 방치될 수 있다. 친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무관하게 모든 생명이 잊히지 않고 국민으로 기록될 권리를 국가가 직접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때문에 미혼모·한부모 단체들은 의료기관이 출생사실을 통보하면 국가가 친부모의 신고가 없더라도 직권으로 출생등록을 하도록 하는 보편적 출생통보제의 도입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도 지난 5월 출생통보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아동이 성장한 뒤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경우다.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친부모의 신상정보를 ‘출생증서’의 형태로 아동권리보장원에 보관하도록 했지만, 아이가 성년이 돼 열람을 청구하더라도 친부모의 동의가 없는 경우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 이는 독일·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보 공개 여부를 두고 친부모와 아동의 기본권이 상충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아동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친부모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지만, 이 과정 자체가 양측에 또 다른 상처가 될 가능성도 있다.

김 의원이 발의한 보호출산법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하나의 법안으로만 막기에는 국내 가족제도에 뚫려 있는 구멍이 너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김 의원의 법안이 일회성 이슈가 아닌 국내 가족제도의 전반적인 개혁을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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