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기덕 필름
사진=김기덕 필름

김기덕 감독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네치아, 베를린)에서 모두 본상을 수상한 유일한 한국 감독이면서, 미투 폭로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상반된 평가를 받는 김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코로나19로 조용했던 영화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의 인물인 만큼 김 감독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언론에게도 복잡한 문제다. <뉴스로드>는 지난 사흘간 국내외 언론이 김 감독의 죽음을 어떻게 전했는지 살펴봤다.

◇ 세계적 영화 거장 vs 미투 논란의 가해자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 전 김 감독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인물이었다. 지난 3월 홍상수 감독이 제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하자, 관련 기사에서 김 감독의 과거 수상경력이 함께 언급된 정도다. 지난달에는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배우와 방송사에 대해 제기한 1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다는 소식이 주요 언론사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이후 김 감독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조선일보가 11일 그의 사망 소식을 단독 보도하면서부터다.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사흘 간 보도된 김 감독 관련 기사 151건을 분석한 결과, 이날 김 감독의 사망 소식과 과거 이력, 그가 라트비아로 이주한 이유 등에 대한 기사가 집중 보도(81건)됐다. 12일부터는 그의 죽음에 대한 영화계의 상반된 반응과 영화평론가 등 관계자들의 발언이 주로 보도됐다.

김 감독 관련 기사의 핵심 연관어로는 주로 사망 장소인 라트비아와 해당 소식이 처음 보도된 현지 언론(라트비아 델피, 러시아 타스통신), 사망 원인인 코로나19 등이 꼽혔다. 과거 이력과 관련된 ‘성폭력 의혹’, ‘미투 논란’ 등도 주요한 연관 키워드였으며, 미투 논란에 대해 언급한 번역가 달시 파켓, 비탈리 만스키 감독 등 영화계 관계자들의 이름도 눈에 띠었다.

 

김기덕 감독 사망 관련 보도의 핵심 연관어. 자료=빅카인즈
김기덕 감독 사망 관련 보도의 핵심 연관어. 자료=빅카인즈

◇ 사실 관계 위주 보도에서 정치 등 다른 논점으로 비화

김 감독 사망과 관련된 기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보도의 초점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1일에는 대부분의 매체가 김 감독의 이름과 사망장소, 사망원인을 언급하는 단순한 사실관계 위주의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12일 부터는 화려한 영화제 수상 이력과 성폭력 의혹이라는 상반된 모습을 조명하는 기사가 다수 나오면서, 매체별로 비중을 두는 지점도 차이를 보였다.

경향신문의 경우 11일 “김기덕, 라트비아서 사망···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한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그 외에도 동아일보 “‘3대 영화제 수상’ 김기덕, 20일 환갑 앞두고 코로나로 사망”, 한국일보 “코로나에 스러진 ‘충무로 이단아’ 김기덕 감독”, 서울신문“‘코로나 사망’ 김기덕 누구?… 세계 3대 영화제 휩쓴 韓 유일 감독” 등은 주로 영화계에서의 경력을 강조한 제목을 사용했다. 다만 이들 매체 모두 기사 내에서는 김 감독의 영화계 경력과 함께 성폭력 가해 의혹을 같은 비중으로 다뤘다. 

제목에서 두 가지 이슈를 모두 다룬 매체도 많았다. 중앙일보는 “3대 영화제 휩쓸었지만 미투로 나락... 코로나에 숨진 김기덕”, 국민일보 “김기덕, 韓영화계 거장에서 추락·라트비아서 사망까지”, 조선일보 “김기덕은 누구...세계 3대 영화제 수상, 미투 폭로 후 국내활동 중단” 등은 기사 내용뿐만 아니라 제목에서도 미투 의혹과 영화제 수상 이력을 함께 거론했다.

반면 한겨레는 별다른 평가없이 “김기덕 감독,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이라는 제목으로 단 한 건의 기사만을 보도했다. 기사내용은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영화계 경력과 미투 의혹을 함께 다뤘다. 

김 감독이 생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사실에 초점을 맞춘 기사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文의 국민으로 살고 싶다’던 김기덕, 해외서 화장 후 돌아올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후보였던 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조명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김씨에 대한 각계의 추모 메시지가 이어진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김씨가 지난 2012년 대선(大選)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나눴던 편지 내용이 다시 주목 받았다”며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김씨의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에 장문의 축하 편지를 보냈고, 김씨는 ‘문재인의 국민이 되고 싶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기생충의 번역가로 알려진 달시 파켓은 트위터에서 김기덕 감독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진=트위터
기생충의 번역가로 알려진 달시 파켓은 트위터에서 김기덕 감독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진=트위터

◇ 해외 언론 "관객 분열시킨 감독"VS"탁월한 창의력" 상반된 평가

3대 영화제 수상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김 감독인 만큼 그의 사망 소식에 대한 외신의 관심도 높았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11일 “논란의 한국 감독 김기덕이 59세로 사망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가디언은 “김 감독은 폭력적이지만 심미적으로 도전적인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이름을 날렸다”면서도 “김 감독의 경력은 지난 2018년 3명의 여성에 대한 강간·성폭행 혐의로 배우 조재현과 함께 기소되면서 선로를 벗어나게 됐다”고 전했다.

프랑스 매체 르몽드는 “2012년 베니스 황금사자 수상자 김기덕 감독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그의 영화와 생애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전했다. 르몽드는 “김 감독은 풍자로 가득한 영화 속에서 극단적인 폭력과 인간의 잔인성을 대담하게 묘사함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며 “그의 폭력적인 영화는 관객들을 분열시켰다. 일부는 그의 영화에서 나타난 여성 혐오를 비난했지만, 다른 이들은 다른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적 배경에 대한 묘사와 창의성을 칭송했다”고 설명했다.

르 몽드는 이어 “김 감독은 2017년 ‘뫼비우스’ 촬영 과정에서 배우에 대한 성적·신체적 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증거부족으로 성폭행 혐의는 기각됐으나, 김 감독은 신체적 폭행으로 인해 벌금을 내야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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