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고 구하라씨. 사진=인스타그램
가수 고 구하라씨. 사진=인스타그램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가수 고 구하라씨의 재산 상속과 관련한 판결을 두고 공분이 일고 있다. 부양 의무를 저버린 구씨의 친모가 상속재산의 40%를 분할받게 됐기 때문이다.

앞서 광주가정법원 가사2부(재판장 남해광 부장판사)는 구씨의 친오빠 구호인씨가 친모를 상대로 제기한 상속재판분할 심판청구소송에서 “유가족과 친모는 6대4로 구씨의 유산을 분할하라”고 주문했다.

구씨의 친모는 구씨가 9살 무렵 집을 떠나 20여년 간 교류가 전혀 없었으나, 구씨가 사망하자 다시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친부가 구씨를 12년간 홀로 양육했다는 점을 고려해 유가족의 기여분을 20%로 정했다. 친모에게는 유가족 기여분을 제외한 나머지 80%의 절반인 40%의 유산이 돌아가게 됐다. 

◇ ‘나쁜 엄마’가 자녀 유산의 40%를 받을 수 있는 이유

재판부가 친부의 기여분을 인정했지만, 판결을 지켜본 여론은 비판 일색이다. 부양의무를 저버린 ‘나쁜 엄마’가 40%나 되는 재산을 가져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 누리꾼들은 “40%가 아니라 4%도 아깝다”, “자식이 피눈물 흘려 번 돈을 저렇게까지 챙기고 싶나”, “인면수심이 따로 없다”, “아직까지도 법이 이래서 안타깝다” 등 친모를 비난하거나 현행법의 한계를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행법은 부모가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저버렸다고 해서 이를 상속결격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민법 1004조에 따르면 상속인의 결격사유로 인정되는 것은 고의로 피상속인 등을 살해하거나 사기·강박으로 유언을 방해한 경우, 유언서를 위조한 경우 등이다. 구씨의 친모처럼 부양의무를 게을리 한 경우는 결격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과거에도 자녀의 죽음을 기회 삼아 돈을 챙기는 비정한 부모가 여러 차례 나타난 바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에서 순직한 장병의 친모가 28년 만에 나타나 군인사망보상금과 유족성금의 절반을 요구한 바 있다. 또한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에도 10년 전 이혼한 친부가 사망한 딸에게 지급된 보상금의 절반을 유가족과 협의 없이 수령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비정한 부모의 상속 막는 ‘구하라법’, 왜 국회 문턱 못 넘나?

이 때문에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상속결격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6건의 ‘구하라법’(법률안 5건, 국민동의청원 1건)이 발의됐다. 해당 법안들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양육비 채무를 상환하지 않은 경우, 자녀를 유기·학대한 경우, 자녀를 폭행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등을 상속결격사유에 추가했다. 

하지만 여론의 강력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들은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한 자”라는 상속결격사유의 의미가 모호하고 자칫 상속 관련 분쟁이 폭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헌법재판소의 답변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2018년 민법 1004조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직계존속의 부양의무 미이행을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살인미수·상해치사 등과 동일 수준의 중대 범법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부양의무 이행 여부를 상속결격사유로 포함시키기에는 기존 사유만큼 위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 

헌재는 또한 “부양의무 미이행을 상속결격사유로 본다면, 상속결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해지고, 그로 인해 상속관계에 대한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저해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21대 국회에서는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다시 구하라법(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과 마찬가지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 한 자”를 상속결격사유로 추가하는 내용이어서, 같은 논의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상속결격·상속제한사유 관련 법률안. 자료=국회 법제사법위원회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상속결격·상속제한사유 관련 법률안. 자료=국회 법제사법위원회

◇ 해외에서는 ‘구하라법’ 어떻게 운용하나?

그렇다면 자녀를 책임지지 않은 나쁜 부모가 유산을 챙기는 사태를 방지할 방법은 없는 걸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고 있다.

서 의원이 발의한 구하라법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나쁜 부모의 상속을 제한하는 방법은 ①상속결격을 두는 경우 ②법원의 결정에 의한 상속권 상실 제도를 두는 경우 ③상속결격과 상속권상실제도를 병행하여 운영하는 경우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①에 해당하는 중국과 대만은 각각 “피상속인을 유기·학대한 경우”, “피상속인에게 심각한 학대·모욕으로 피상속인이 상속을 못 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도록 하는 경우”를 상속결격사유로 제시하고 있다. 구하라법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나쁜 부모에게 유산이 분할되는 사태를 방지하고 있는 셈이다. 

②에 해당하는 독일과 일본의 경우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 유언 방해 등 중대한 범법·부정행위만 상속결격사유로 인정된다는 점은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독일은 “직계비속이 피상속인에 대하여 법률상 부담하는 부양의무를 악의적으로 위반한 때”를 법정상속인에게 인정되는 의무분(유류분)을 박탈할 수 있는 사유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 또한 유류분이 인정되는 추정상속인이 피상속인을 학대·모욕하거나, 현저한 비행을 저지른 경우, 피상속인이 추정상속인의 폐제를 가정재판소에 청구하거나 유언으로 그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상속결격제도가 아니더라도 법원 재판을 통해 나쁜 부모에게 지급될 유류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③에 해당하는 프랑스는 상속결격사유의 경중을 고려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피상속인을 사망에 이르게 해 중범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한국가 마찬가지로 당연히 결격사유로 인정된다. 

하지만 ▲피상속인에 대해 경범형을 선고받거나 ▲피상속인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 유죄판결을 받거나 ▲피상속인에 대한 무고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는 다르다. 결격사유로 인정받기 위해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다른 상속인이나 검사가 피상속인 사망 후 6개월 내 재판을 청구하면, 법원이 결격 여부를 판단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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