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은 가른다
말[言]은 가른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21.01.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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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선(392x51x291mm) 나무 (나무 240x87x950mm), 아크릴+스테인리스+페인트
공병.선(392x51x291mm) 나무 (나무 240x87x950mm), 아크릴+스테인리스+페인트

 

말은 가른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고
이쪽과 저쪽을 가른다.

바다와 뭍
위와 아래
무거움과 가벼움
말은 가른다.

달과 달빛을 가르고
물과 안개를 가른다.

머리와 가슴을 가르고
생각과 생각을 가른다.

말은 가른다, 냉정히
삶과 죽음을 가르고
적음과 많음을 가른다.

칼처럼 잘 드는 칼처럼
말은 무엇이든 가른다.
말은 끝끝내 가르고 만다.

너와 나를 가르듯이 말은 
싸움질하며 자신까지도 가른다.
폭력처럼 말은
결국 너와 나를 
끝끝내 부수고 만다.

한번 그것이 옳다고 확신이 드는 순간 우리 고정관념에 빠집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고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신념이 되니까요. 신념에 정의롭다는 도덕성이 더해지면 그것은 확신에 찬 종교 같은 것이 됩니다. '뭔가 조금 안다는 사람의 무지와 어리석음'은 '확실히 안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이런 생각은 자신에게 끝나지 않습니다. 타인의 새로운 앎과 자유를 방해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게 하게도 합니다.

말[言]은 사물을 개념화합니다. 개개의 사물에 이름을 부여함으로 그 사물을 기억하게 하고 다른 사물로부터 사물을 구분하게 합니다. 말이 없다면 아마도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못하고 물과 불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실의 집이 없어도 집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집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말은 사물의 존재를 환기하게 합니다. 말은 바로 현실의 집이 됩니다. 말은 그냥 소리가 아닙니다. 의미이고 존재이고 사상입니다. 생각이 잘못된 사람은 말을 잘못하는 사람입니다.

집을 집이라고 하고, 구름을 구름이라고 하고, 강을 강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쉽지마는 않습니다. 집을 집이라고 알지 못할 경우, 집을 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집을 집이라고 알더라도 집이라고 말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거짓말이지요. 이럴 때 말은 우리를 가르고 분쟁하고 싸우고 절망하게 합니다. 

‘뭔가 확실히 안다는 고집’에서 벗어나 ‘자신도 모를 수 있다’라고 생각할 때 말은 힘을 가집니다. 타인에 대해 유연성이 생깁니다. 화합하고 인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말이 됩니다.  집을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말은 너와 나를 하나로 만듭니다.

‘너와 나를 가르듯이 말은 / 싸움질하며 자신까지도 가른다./ 폭력처럼 말은 / 결국 너와 나를 / 끝끝내 부수고 만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15:11)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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