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 국유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 자료=한국은행
중국 4대 국유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 자료=한국은행

비트코인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투기광풍이 잦아든 후 부활이 요원해보였던 비트코인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유동성이 유입되면서 국내에서 개당 3000만원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조만간 비트코인이 3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하며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되살아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꼭 ‘투자’의 차원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암호화폐를 통해 결제시스템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더욱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흐름은 전혀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중국의 CBDC 실험

CBDC는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활용해 만든 디지털 화폐를 의미하지만 일반적인 암호화폐와는 달리 발행 주체가 각국의 중앙은행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지급보증이 없고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는 달리, CBDC는 중앙은행이 지급보증을 해주며, 가치 또한 법정통화와 연동돼 있다. 

실제 유럽의회는 지난 4월 발표한 ‘암호화자산: 핵심 개발, 규제 및 대응’ 보고서에서 CBDC를 “중앙은행의 직접적 채무로서 지급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전자적인 화폐 가치 저장 수단”이라고 규정하며, 암호화폐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암호화폐의 발전이 CBDC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기는 했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와 달리 CBDC는 특정 기술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중앙은행이 발행한다는 점에서 민간자산이 아닌 주권화폐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관리하고 가치가 고정됐다는 점에서 CBDC는 비트코인처럼 투자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CBDC는 실물 화폐의 한계를 극복하고 금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통화다. 결국 CBDC의 미래는 현금의 대체재로 봐야 한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운영체계. 자료=한국은행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운영체계. 자료=한국은행

◇ 디지털 위안화, 베타테스트에서 '합격점'

이 때문에 CBDC는 기존 경제시스템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각국 정부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CBDC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디지털 위안화’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공개 시험을 진행한 바 있다. 

지난 10월 광둥성 선전에서 시작된 1차 시험에서는 총 5만명에게 1인당 200위안씩 1000만 위안이 지급됐으며, 2차 시험은 장쑤성 쑤저우시에서 1인당 지급액은 동일하지만 대상을 10만명으로 늘려 진행됐다.

2차 시험의 경우 지급액의 95%가 시험 기간(12월 11일~17일) 내 소비됐다는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다. 특히 지정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했던 1차 시험과 달리 2차 시험은 온·오프라인 결제가 모두 가능했는데, 온·오프라인 비중이 각각 44.7%, 55.3%로 고르게 분포했다. 

두 차례의 ‘오픈 베타 테스트’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서 중국의 CBDC 도입 정책에도 가속도가 붙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접촉이 어려워 CBDC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 것 또한 공식 발행이 멀지 않았음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2021년 중국 경제 전망 및 주요 이슈’ 보고서에서 두 차례의 시범사용으로 ‘디지털 위안화’가 공식발행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며 “앞으로 디지털 위안화 시범사용이 동부 대도시뿐 아니라 금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서부지역까지 확대하면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무렵 실질적 발행에 준하는 대규모 사용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디지털 위안화가 공식 발행되면 현금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 한은은 “성공적으로 발행될 경우, 향후 2~3년 내에 현금화폐의 약 30~50% 정도가 디지털 위안화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11월 기준 유통 중인 현금이 약 8조2000억 위안임을 감안하면, 최대 4조1000위안의 디지털 위안화가 현금을 대신해 사용될 것이라는 뜻이다. 

 

전세계 외환시장에서 주요국 통화의 비중 변화.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전세계 외환시장에서 주요국 통화의 비중 변화. 자료=자본시장연구원

◇ 디지털 위안화, 미 달러 대체는 시기상조?

중국 정부가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노리는 것은 단순히 ‘현금 관리비용 절감’이나 ‘자금세탁 방지’만이 아니다. 디지털 위안화 추진 배경에는 민간사업자가 장악한 결제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높이는 한편,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에 대항헤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려는 목적도 숨어있다. 

실제 중국 모바일 결제부문은 위챗·알리페이 등 민간 지급결제사업자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경제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중국 정부로서는 민간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전산오류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위안화의 국제화 또한 중국의 CBDC 정책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2.0%(미 달러는 61.8%)에 불과하다. 같은 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GDP의 16.3%를 차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규모에 비해 통화의 위상이 너무 낮은 셈이다.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질서에서 미중 갈등을 유리하게 이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금융 압박을 견디기 위해 위안화의 국제화는 필수과제인 셈이다. 실제 팡싱하이 중국 증권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6월 “위안화 국제화는 외부 금융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리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우회 불가능한 과제”라고 말한 바 있다.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면 달러 중심 질서를 흔들겠다는 중국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하원 청문회에서 자체 개발 디지털화폐인 ‘리브라’를 변호하며 중국의 디지털화폐시장 주도권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은 디지털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거나 그와 대등한 기축통화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프리 프란켈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교수에 따르면 통화의 국제적 위상은 개방된 자본시장과 광범위한 통화 신뢰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중국은 아직 둘 모두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틴 초르젬파 연구원 또한 지난 5월 “중국 CBDC는 위안화를 디지털화한 수준으로 달러의 위치를 위협할 수 없을 것”이라며, 디지털 위안화의 주 사용처는 중국 국내 시장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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