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두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윤두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180석의 거여(巨與)에 기울어진 21대 국회에서 야권의 불만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다수의 인사와 법안이 야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회 문턱을 쉽게 넘어서자, 야권은 여당이 의석 수를 믿고 폭주하고 있다며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이 같은 여야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달 28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였다. 구의역 사고 피해자와 임대주택 거주민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변 장관의 청문보고서는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을 거부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기립표결을 통해 채택됐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탈북 외교관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북한에서도 기립투표는 보기 어려운 일’이라며 놀랍다고 말했다”며 “태 의원마저도 놀라게 한 기립투표가 법사위, 문체위, 국토교통위 곳곳에서 벌어졌다. 입법부의 권위는 바닥을 기고 국격은 쓰러졌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 “북한서도 보기 어려운 기립투표” 사실일까?

윤 의원의 페이스북을 비롯해 관련 기사, 여권에 비판적인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민주당을 비난하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한 누리꾼은 “북한 공산당에서 하는 짓과 뭐가 다르냐”며 “굳이 귀찮게 일어나지 말고 북한처럼 당원증을 꺼내 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리꾼들의 비판은 기립 표결이 마치 전체주의 국가의 공개 투표를 연상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180석을 믿고 공개 투표를 통해 야당을 배제한 채 각종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달리 기립 표결은 국회법에 의해 보장된 표결 방식 중 하나다. 국회법 112조 1항은 “표결할 때에는 전자투표에 의한 기록표결로 가부(可否)를 결정한다. 다만, 투표기기의 고장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기립표결로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기립표결은 국회에서 전자투표가 일반화되기 전 주로 사용된 표결 방식이다. 전자투표가 국회에 도입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 8월이지만, 정권의 투표조작에 대한 야당의 의심과 전자투표장치 조작 미숙, 개별 의원의 투표 결과가 곧바로 공개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전자투표가 국회에서 처음 실시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3월 9일로 이날 약사법 개정안이 전자투표를 통해 가결됐다. 이후 16대 국회가 문을 연 2000년부터는 점차 전자투표가 일반적인 표결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갔고, 기립표결의 비중도 점차 줄어들었다.

 

사진=윤두현 국민의힘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윤두현 국민의힘 페이스북 갈무리

◇ 한나라당도 기립 표결 통해 각종 안건 처리

전자투표가 일반화된 후에도 기립표결은 종종 사용됐다. 예를 들어, 지난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댓글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안건을 기립표결을 통해 가결한 바 있다. 당시 본회의장 개보수 공사로 전자투표장치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여당을 비판하는 국민의힘도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기립표결을 통해 각종 안건을 처리한 바 있다. 지난 2011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기립표결로 통과된 것. 당시 문체위 회의에는 민주당, 자유선진장, 창조한국당 등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 14명, 한나라당과 합당 예정이었던 미래희망연대 의원 1명 등 15명만이 참석해 의사정족수를 채우자마자 7분 만에 표결을 마쳤다. 덕분에 당시 부동산 투자, 부당 증여, 증여세 탈루 등의 의혹으로 궁지에 볼렸던 최 위원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이 때문에 야당이 내로남불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송요훈 MBC 기자는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서 “북한의 선거에서 투표는 공개투표이고 사실상 강제투표인데, 태영호는 남한의 선거에서 비밀투표 자유투표를 봤을 때는 놀라지 않았나?”라며 “태영호에게 함 물어봐라. 북한에도 야당이 있냐고”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송 기자는 이어 “상임위에서 손을 들어 찬성 표시를 하거나 기립하여 찬성 표시를 하거나 모두 허용되는 방식”이라며 “북한에서 특권을 누리고 살다가 탈북한 태영호가 민주주의 판정관인가?”라고 말했다. 

 

사진=송요훈 MBC 기자 페이스북
사진=송요훈 MBC 기자 페이스북

◇ 기립표결 논란, 여여 갈등의 상징적 현상

국회법이나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이 변 장관의 인사청문회와 함께 불거진 기립표결 논란은 표결 방식의 정당성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기립표결 논란은 의석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여야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립표결은 법적으로 문제없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흔하게 사용되는 방식은 아니다. 본회의에서는 주로 전자투표가 사용되며, 상임위에서는 위원장이 소속 위원들의 이의 유무를 묻는 방식을 사용한다. 상임위에서는 관행적으로 여야 간사가 절충안을 만드는 과정이 선행되기 때문에, 최종 표결에서는 이의 여부를 확인한 후 가결을 선포하는 간단한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실제 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기립표결로 가결된 경우가 4번에 불과하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의석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변 장관 청문보고서 채택 건뿐만 아니라 공수처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중요 안건이 기립표결을 통해 통과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에 발목을 잡혀온 현안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민주당의 전략인 셈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180석을 믿고 야당과의 논의 없이 법안을 처리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21대 국회에서 여야의 균형이 무너진 데다 양측의 대화가 단절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기립표결과 관련된 논란은 계속될 예정이다. 결국 현재의 논란에서 누가 옳았는지는 기립표결을 통해 통과된 안건들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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