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입양아 학대사망사건, 언론 보도 어떻게 달라졌나
16개월 입양아 학대사망사건, 언론 보도 어떻게 달라졌나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1.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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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아동이 잠든 경기도 양평의 한 수목장.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피해 아동이 잠든 경기도 양평의 한 수목장. 방문객들이 추모의 뜻으로 놓고 간 물품들이 가득하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가 양부모의 장기간 학대로 인해 숨진 정황이 밝혀지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학대 정황을 방송하면서, 가해자의 처벌과 아동보호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국내 언론들도 활화산처럼 폭발 중인 여론을 반영해 해당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뉴스로드>는 정인양이 사망한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국내 언론이 이 문제를 어떻게 조명했는지 되짚어봤다.

 

빅카인즈에서 '정인이'로 검색한 결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전에는 거의 기사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빅카인즈
빅카인즈에서 '정인이'로 검색한 결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전에는 거의 기사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빅카인즈

◇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전 기사는 겨우 10건

빅카인즈에서 ‘정인이’를 검색한 결과, 아동이 사망한 지난해 10월 13일부터 이달 6일까지 총 792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특히, 대부분의 기사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된 후 보도됐으며, 방송 전 보도된 기사는 10건에 불과했다. 방송 전 보도된 기사들은 지난해 11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의 경찰 대응 비판 기자회견, 12월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의 살인죄 적용 촉구 기자회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입양절차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등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전에도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는데, 그에 비해 기사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지난해 11월 가해자 및 경찰 처벌을 요구하는 두 건의 국민청원이 게시됐는데, 각각 12만8716명, 23만1440명의 동의를 받았다. 보배드림 등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청원과 관심을 촉구하는 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와 수백 건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빅카인즈에서 '정인이', '입양아 사망', '입양아 학대' 등으로 검색한 결과. 여전히 방송 후 기사 비중이 더 크지만, 방송 전에도 상당한 기사가 보도됐음이 확인된다. 자료=빅카인즈
빅카인즈에서 '정인이', '입양아 사망', '입양아 학대' 등으로 검색한 결과. 여전히 방송 후 기사 비중이 더 크지만, 방송 전에도 상당한 기사가 보도됐음이 확인된다. 자료=빅카인즈

◇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후 기사 제목 달라져

방송 전 기사량이 극도로 적은 것은 언론이 여론의 관심보다 빠르게 사건을 조명한 것이 아니라,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보도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방송 전후의 기사량이 극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후 모든 매체의 관련 기사 제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 방송 전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들은 대부분 “16개월 입양아·영아 (학대) 사망”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정인이’와 함께 ‘입양아 사망’, ‘입양아 학대’를 함께 검색할 경우 관련 기사는 1097건으로 늘어난다. 방송 전 해당 사건에 대해 보도한 기사는 10건이 아니라 300건이 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방송 전후로 같은 사건에 대한 기사 제목이 극적으로 바뀌었을까? 이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해당 회차 제목이 “정인이는 왜 죽었나”로 피해 아동의 이름을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제작진이 제안한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전국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피해 아동의 이름이 사건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면서 언론도 기사 제목을 바꿨다는 것. 실제 방송 직후인 2~3일 보도된 대부분의 기사에는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구가 포함돼있다. 이후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이라는 제목은 일제하 “정인이 사건”으로 바뀌었고, 현재도 이 같은 기사제목이 통용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전(위)과 후 기사 제목의 변화. 자료=빅카인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전(위)과 후 기사제목의 변화. 자료=빅카인즈

이 사건이 ‘정인이 사건’으로 불리기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아이에 대한 추모와 재발 방지의 다짐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번 사건을 피해 아동의 이름이 대표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실제 과거 조두순 사건의 경우, 다수의 매체에서 피해 아동의 가명을 제목에 사용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조두순 사건’으로 제목을 변경했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 당시에는 ‘여검사 성추행 사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일부 매체들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사 제목이 가해자나 범죄의 내용이 아닌 피해자의 이름에 초점을 맞출 경우, 범죄가 발생한 구조적인 배경이나 사태의 심각성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특히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를 강조하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정인이 사건’으로 칭하는 것이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서 비롯된 만큼, 어떤 악의나 잘못이 있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과 ‘정인이 사건’ 중 어떤 것이 범죄의 심각성을 더 잘 보여주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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