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지난해 9월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 청원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지난해 9월 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 청원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여야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관련 주요 쟁점에 합의하면서 노동계와 산재피해자 및 유가족들의 오랜 염원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초안과 달리 주요 내용이 변경되면서 재계와 노동계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는 모양새다. 

앞서 여야는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중대재해법을 논의한 결과 그동안 이견이 있었던 주요 쟁점들에 대해 대부분 합의했다. 여야는 오늘 다시 법안소위를 열고 법 적용 유예기간을 논의한 뒤 8일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방침이다.

◇ 중대재해법 합의안, 무엇이 빠졌나?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사업주에게 묻고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재해의 원인이 현장 관리자나 노동자 개인의 잘못보다는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부실한 관리체계에 있다고 보고,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안이다.

이 때문에 중대재해법에 대해 노동계는 지지, 재계는 반발하는 구도가 형성됐지만 정작 여야 합의가 이뤄지자 노동계에서마저 강력한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초안에 담겼던 핵심 내용들이 여야 합의 과정에서 대거 변경·삭제되면서, 알맹이 없는 법안이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실제 6일 여야 합의의 핵심은 “법안의 적용범위를 어디까지 축소하느냐”였다. 이날 여야는 ▲중대산업재해와 관련해 ‘5인 미만 사업장’을 법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중대시민재해(산업현장이 아닌 시설 이용자가 피해를 보는 사고) 적용 대상에서도 ‘10인 이하 소상공인’ 및 ‘1000㎡ 미만 다중이용업소’를 빼기로 했다. 

또한 재해 발생 시 책임 범위에 발주처나 임대인을 포함시키는 내용과 공무원 처벌 특례 조항도 삭제됐다. 사업주가 안전 의무를 5년 내 3회 이상 위반했거나, 재해 관련 조사를 방해하고 은폐를 지시할 경우 사업주의 책임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인과 추정’ 조항도 없앴다. 

‘경영책임자’의 범위도 허술하게 규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는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총괄하는 사람(대표이사 등) ‘또는’ 안전·보건업무 담당자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재벌총수나 핵심 경영진이 하급자에게 책임을 넘기고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생겼다는 것. 이 때문에 ‘또는’이 아닌 ‘및’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여야는 ‘또는’을 고수했다. 

◇ 재계, “3대 수정사항 반영돼야"

여야가 중대재해법 논의 과정에서 ‘덧셈’보다 ‘뺄셈’에 집중한 이유는 재계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5일 “중대재해법은 헌법과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 등에 크게 위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과 산업현장 관리에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이라며 “최소한 주요사항에 대해서는 경영계 입장이 반드시 반영되도록 법사위 소위에서 심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여야가 합의에 이른 6일에도 경총 등 10개 경제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사업주 징역 하한규정을 상한 규정으로 바꾸고 ▲중대재해로 인한 사업주 처벌은 ‘반복적 사망사고’로 한정하며 ▲의무규정을 명시하고 이를 이행했을 경우 발생한 사고에 대해 면책하는 등 세 가지 사항을 법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했다. 

여당도 노동계보다는 경영계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6일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이 법은 원청인 대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성을 강화시켜 중소기업의 재해율을 크게 낮추는 중소기업 사고예방법”이라며 “경영계는 ‘무조건 반대’에서 한발 물러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산업현장을 일대 혁신해 나간다는 각오로 입법 논의에 응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 노동계, “기업처벌법 아닌 노동자 차별법”

한편 여야 합의안이 예상보다 후퇴한데다 노동계에 대한 설득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시민단체와 노조를 중심으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다수의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및 노조 등이 참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6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여야 합의에 대해 “기업처벌이 아니라 차별인, 누더기조항”이라고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잠정합의안에는 ‘5인 미만 사업장 적용배제’가 들어가고, 경영책임자 의무조항에서 ‘발주처 공사기간 단축, 일터 괴롭힘 등’의 의무는 명시되지 않았다. 그 결과 어떤 죽음은 용인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제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다 죽은 것을 자책해야 하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셈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또한 7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과 발주처, 실질적 경영책임자의 책임은 사라지고 공무원 처벌도 사라졌다. 인과관계 추정이 사라졌고 하한이 있는 처벌은 반토막 났고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도 후퇴했다”며 “화려한 말잔치의 결과가 고작 이것이었나?”라고 반문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고질적인 불공정 하청구조를 깨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적용 배제를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고 싶다”며 “재계의 요구만 대폭 수용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이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있으나 마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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