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트위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12시간 동안 차단했다. 사진=트위터
6일(현지시간) 트위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12시간 동안 차단했다. 사진=트위터

“트위터 운영원칙 위반으로 이 트윗은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이 6일(현지시간) 12시간 동안 정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 확정을 저지하기 위해 워싱턴DC 의사당에 난입한 자신의 지지자들을 “위대한 애국자”라고 부르며,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주장을 담은 트윗을 남겼다.

사상 초유의 폭력적인 의사당 점거 사태에 어처구니 없는 지지 트윗을 남긴 트럼프 대통령에게 레드 카드를 내민 것은 트위터뿐만이 아니다. 페이스북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의사당 난입 사태 후 올린 지지자들을 향한 동영상 메시지를 삭제하고, 계정을 24시간 동안 정지시켰다. 스냅챗의 모기업 스냅도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차단하는 등 소셜미디어(SNS) 업계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기행에 선을 긋는 분위기다. 

◇ 소셜미디어의 자율규제, ‘뒷북’ 비판 나오는 이유

이번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수많은 기행 중 하나로 비쳐지고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대표적인 글로벌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의 컨텐츠 규제가 미국 대통령에게도 강력하게 적용되는 현장이 전 세계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초기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혐오발언과 가짜뉴스 등의 컨텐츠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가짜뉴스가 선거나 팬데믹 사태 같은 사회적 이슈까지 좌지우지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유해한 컨텐츠를 걸러낼 수 있는 자율규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실제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잭 도시(트위터) 등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해 10월 열린 미국 상원 상무위원회 화상 청문회에서 컨텐츠 규제는 검열이 아니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가짜뉴스를 예방함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문제를 키워놓고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트위터의 초기 투자자인 크리스 사카 로워케이스 캐피털 대표는 7일 트위터를 통해 “저커버그와 도시의 손에도 피가 묻어있다. 그들은 4년 동안 이런 테러를 합리화해왔기 때문이다”라며 “반역을 선동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당신의 손에도 피가 묻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와 가짜뉴스의 유통채널로 작동해온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사실상 의사당 난입 사태의 원인이라는 비판이다. 

 

트위터의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인 크리스 사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차단한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사실상 의사당 난입사태의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사진=트위터
트위터의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인 크리스 사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차단한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사실상 의사당 난입사태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사진=트위터

◇ 트럼프가 촉발한 ‘통신품위법 230조’ 논란

이 때문에 소셜미디어의 ‘자율규제’가 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한 허울 좋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의 경우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230조’의 보호 아래 별다른 규제 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통신품위법 230조는 신문이나 출판사와 달리, 소셜미디어 플랫폼 등 인터넷 기업은 사용자가 게재한 컨텐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플랫폼 업체가 직접 컨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중개한다는 이유에서다. 1996년 제정된 이 법안 덕분에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소송 리스크 없이 빠르게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었다. 230조가 수정·폐지되지 않는 한, 덩치가 커진 소셜미디어에 유통되는 각종 혐오 컨텐츠와 가짜뉴스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단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230조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소셜미디어를 정치적 도구로 적극 활용해온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다. 이들은 보수 성향 컨텐츠에 편향적인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며, 230조를 폐지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검열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컨텐츠 규제 책임을 더 많이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신품위법 230조 논쟁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논쟁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자율규제에 맡기지 말고 법적인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추세다. 

실제 유럽 각국에서는 이미 소셜미디어 플랫폼에게 컨텐츠 관리 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2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유해 컨텐츠를 삭제하고 이용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안을 발표했다. 의무를 위반한 플랫폼 업체에게는 벌금이 부과되거나, 문제가 반복될 경우 운영중단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

독일 또한 지난해 6월 연방의회에서 ‘소셜네트워크에서의 법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네트워크집행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게 신고된 유해 컨텐츠를 24시간 내 삭제하도록 하고 위반 시 최대 7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안이 개정되면서 법원의 허락 하에 피해자에게 유해 컨텐츠 작성자의 정보를 제공할 의무까지 추가됐다. 또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삭제된 유해 컨텐츠를 연방범죄수사청에 신고하고 작성자의 IP주소 등을 알려 원활한 수사를 도와야 한다.

국내에서는 ‘n번방 사건’ 등으로 인해 소셜미디어 플랫폼 규제 필요성이 제기됐다. 성 착취 영상이 소셜미디어와 메신저앱으로 유포되는 사건이 되풀이되자,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기 때문. 이 때문에 20대 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5월 20일, 인터넷 사업자에게 디지털 성범죄물 유포를 방지할 의무를 부과한 ‘n번방 방지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한, 21대 국회에는 인터넷 사업자에게 가짜뉴스 유포 책임을 묻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포털사이트 및 소셜미디어 플랫폼에게 허위조작정보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가짜뉴스 방지 3법’을 대표 발의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꼭 모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프 뷰커스 전 타임 워너 CEO와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31일 미국 포춘지에 기고한 글에서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를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위협으로 볼 수 없다”며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만들 자유가 있다면, 플랫폼을 안전하게 유지할 책임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이어 “편집 의무가 면제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사용량과 광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분노를 조장해왔다”며 “인쇄매체와 전자매체, 소셜미디어에게 공평한 규칙을 적용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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