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 내용 중 일부.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 내용 중 일부.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16개월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전말이 재판을 통해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론을 반영해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했지만, 전문가들은 법 개정만으로 학대 위험에 놓인 아이들을 모두 지킬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어떤 내용 담았나?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16개월 아동학대 사망 사건’과 같은 끔찍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발의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66명 중 264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가 학대 정황을 신고할 경우 지자체 및 수사기관이 즉시 조사·수사에 착수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세 차례나 학대의심 신고를 접수하고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아동을 학대 위험에 방치한 점을 보완한 조항이다. 

또한 경찰이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현장조사 시 출입할 수 있는 장소를 확대하고, 피해아동과 신고자를 학대 행위자와 분리해 조사하도록 했다. 피해아동에 대한 응급조치기간(72시간)을 공휴일·토요일이 포함되는 경우 48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해 아동보호의 실효성도 확보했다.

이 밖에도 개정안에는 ▲아동학대 행위자가 출석·진술·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관련 업무수행을 방해할 경우 처벌 강화 ▲아동학대 범죄 사건 증인에 대한 신변안전 조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아동학대 관련 교육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진=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페이스북 갈무리

◇ 전문가들, “형량 강화는 답이 아니다”

이번 개정안이 특이한 점은, 이런 사건을 계기로 긴급하게 처리된 법안 치고는 형량강화 등의 강력한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개정안에서 빠진 이유는 현장에서 피해아동 보호를 위해 힘써온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발의된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은 이번에 통과된 정부안을 포함해 무려 20건에 달한다.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여론이 분노하자, 국회가 이를 의식해 실효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무더기로 법안을 쏟아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발의된 법안 중에는 전문가들이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한 내용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형량 강화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발의한 법안의 경우 학대행위로 아동에게 중상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형량을 기존의 두 배(중상해 3년→6년, 사망 5년→10년)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형량이 높아질 수록 입증 책임도 무거워지기 때문에 법원도 더욱 강력한 증거를 요구하게 된다. 학대행위가 은밀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아동의 진술에 주로 의존하게 되는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오히려 불기소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6일 페이스북을 통해 “법정형이 높으면 법원에서도 높은 수준의 증거 없으면 증거 부족하다고 무죄가 나온다”며 “이미 무기징역까지 상한선인데 강하게 처벌하려면 왜 하한선을 건드리나? 이건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권고양형을 상향조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 아동보호, 법 지킬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

이 밖에도 ▲1년 2회 이상 신고시 아동과 학대행위자 즉시 분리 ▲수사기관이 응급조치의무를 위반할 시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이 제안됐지만 최종적으로는 법안에 포함되지 못했다. 특히 ‘즉시분리’ 조항의 경우, 분리된 아동을 보호할 시설을 확충할 대책도 없이 추진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기준 국내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총 72개로 2019년(73개)에 비하면 오히려 1개가 줄어들었다. 쉼터 한 곳당 정원은 5~7명 수준으로 전국의 쉼터를 모두 더해도 보호할 수 있는 아동의 수는 5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매년 증가하는 아동학대 범죄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실제 2015년 1만1715건이었던 아동학대 사례는 2019년 3만45건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쉼터가 보호한 아동의 수는 1044명에 불과했다. 같은 해 발생한 재학대 사례는 총 3431건, 피해아동은 2776명에 달한다.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을 분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설과 인력이 확충됐다면, 수천 명의 아이들을 재학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쉼터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쉼터는 전용면적 100㎡ 이상, 방 4개 이상의 주택형 숙소로 인근에 유해업소가 없고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장소에 세워져야 한다. 지자체에 쉼터 설립을 위한 국고보조금이 지급되지만,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주택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 2015년 4곳의 쉼터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지만, 예산 문제로 그해 2곳을 개소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급여나 아이들의 생활비로 지급되는 금액도 넉넉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을 즉시 분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이를 지키기는 어렵다. 

김예원 변호사는 “즉시분리 매뉴얼은 이미 있다. 매뉴얼이 잘 작동되는 현장을 만들어야지 즉시분리를 기본으로 바꾸면, 가뜩이나 쉼터가 분리아동의 10%도 안 되는 상황에 갈데없는 아이들 어디 보내려고 이러나”라고 지적했다. 포화상태에 이른 학대아동 보호시설을 확충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보여주기'식 입법보다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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