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방송화면 갈무리
사진=SBS 방송화면 갈무리

강추위가 몰아쳤던 지난 8일 서울 강북구에서 내복차림의 아이가 거리를 헤매다 시민의 도움으로 구조된 사건이 발생했다. ‘16개월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의 여파로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를 방치한 친모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언론 또한 해당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며, 입양아 사망사건을 연관지어 거론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지 않은 채 보도된 기사들은 홀로 아이를 키워 온 친모를 악마화하는데 열을 올렸을 뿐이었다. 일부 매체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아동학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언론은 슬그머니 한부모가정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논점을 옮겼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전 보도에 대한 정정이나 사과는 없었다. 

◇ “대소변 젖은 바지” 학대에 초점 맞춘 자극적 보도

<뉴스로드>가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8일부터 18일까지 ‘내복 아이’를 검색한 결과 관련 보도는 총 123건으로 집계됐다. SBS가 지난 9일 단독보도로 처음 사건을 보도한 뒤 10일 다수의 매체에서 24건의 후속 보도가 나왔다. 11일에는 전날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면서 48건의 기사가 쏟아졌고, 이후 기사량이 점차 감소했다.

초기 보도 내용은 모두 아동학대 가능성에 중점을 뒀다. 처음 사건을 보도한 SBS 8시 뉴스는 “하루 종일 한 끼도 챙겨 먹지 못한 아이는 영하 15도가 넘는 추위 속에 내복 차림으로 집 밖으로 나왔고,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편의점 앞에서 발견됐다”며 “아이가 상습적으로 방치됐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또한 “대소변으로 젖은 바지가 부끄러운지 아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집안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쓰레기가 가득했다” 등 학대를 의심하게 만드는 정황도 함께 전했다. 

이후 보도된 기사들 또한 SBS와 비슷한 내용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10일 인근 주민의 발언을 인용해 해당 아동이 “이날뿐만 아니라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혼자 편의점 앞을 서성였다”고 전했다. MBC 또한 “아이와 엄마는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집 안은 옷가지와 집기가 쌓여 있고 불결한 상태였다”며 “보름 전에도 같은 편의점 앞에서 이 여자아이가 혼자 서 있어, 주인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게 했다”고 전했다.

지난 8일~18일 '내복 아이' 사건 관련 기사량 추이 및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지난 8일~18일 '내복 아이' 사건 관련 기사량 추이 및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11일, JTBC 방송 후 반전된 보도행태

하지만 11일, JTBC가 사건의 전말을 취재해 보도하자, 기존 보도의 허점이 드러나게 됐다. JTBC에 따르면, 내복 차림으로 발견된 아이의 친모는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아이를 키워왔으며, 양육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모자원에서 생활하다 4개월 전 독립했다. 

이후 임대주택으로 거주지를 옮겨 자활근로와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친모는 사건 발생일,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보채는 아이를 집에 놔둔 채 일터로 향했다. JTBC는 친모가 일터에서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34번이나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아이가 미아 방지 팔찌를 차고 있었으며, 연락을 받은 친모가 편의점에 도착하자 아이가 상당히 반가워했다는 최초 신고자의 증언도 나왔다. 경찰 또한 JTBC와의 인터뷰에서 “아이가 매우 밝고 쾌활하며, 신체적 학대 정황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15일 미디어오늘이 전한 사건의 뒷이야기도 기존 보도의 맹점을 보여준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친모는 사건이 발생할 즈음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반일제 근무를 신청할 예정이었다. 조만간 전일제에서 반일제로 전환하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자주 통화하면 될 것이라며 잠시 마음을 놓은 셈이다. 긴급돌봄서비스는 당일 신청이 불가능해 이용할 수 없었다는 점도 아이가 홀로 집을 지키게 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내일이면 어차피 주말이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휴대전화를 두고 나갔다”는 친모의 발언을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보도했다. 

“대소변에 젖은 바지”, “쓰레기로 가득 찬 집안”, “하루 종일 한 끼도 챙겨먹지 못했다” 등의 자극적인 보도도 문제다.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 없이 친모가 평소 아이를 완전히 방치한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실제 친모는 미디어오늘을 통해 평소 간식거리를 비치해뒀으며, 아이는 아직 대변 처리를 스스로 하지 못해 친모가 없는 상황에서 당황해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안이 어지러운 것 또한 양육자가 자리를 비워 아이와 반려견만 남은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초기 보도에서 3살로 알려졌던 아이는 실제로는 햇수로 계산해 6살이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사건이 보도된 셈이다. 

사진=JTBC 방송화면 갈무리
사진=JTBC 방송화면 갈무리

◇ '부주의'에서 '상습 아동학대'로 과장된 사건

일부 매체의 취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자 친모를 아동학대 용의자로 지목했던 언론의 보도행태도 한부모가정의 어려움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실제 14일에는 “한파 속 ‘내복 아이’ 엄마, 육아 위해 ‘반일제 근무’ 알아봤었다”(한겨레), “홀로 생계 챙기려다… 혹한속 내복아이 엄마 안타까운 사연”(서울신문), “강추위 속 내복만 입고 배회한 아이 母 근무시간 줄이려 했다”(한국경제), “딸 돌보려고… 반일제 근무 찾았던 ‘내복 아이’ 엄마”(국민일보) 등의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일보는 17일 친모의 어려운 사정에 대한 동정 여론과, 방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동정론을 비판하는 의견을 함께 묶어 보도했다. 

SBS 또한 15일 시사교양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Y’를 통해 친모의 어려운 사정과 사건의 전말을 보도했다. 다만 처음 사건을 보도한 8시 뉴스에서는 후속 보도가 없었다. 

아직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부모가정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건을,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 상습적인 방임과 학대로 보이게 한 언론의 초기 보도행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