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아동학대 방지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아동학대 방지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으로 논란에 휘말렸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입양제도 개선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입양부모의 마음이 바뀔 경우 입양을 취소하거나 입양아동을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지적을 받은 것.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입양 확정 전 양부모 동의하에 관례적으로 활용하는 ‘사전위탁보호’ 제도 등을 보완하자는 취지”라며 곧바로 해명에 나섰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입양특례법 개정을 통해 (사전위탁보호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아이를 파양시키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文 발언, ‘입양 전 위탁’ 의미한 것” 靑 해명 맞나? (○)

사전위탁보호, 또는 입양 전제 가정위탁, 시험양육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입양 대상 아동이 법원 허가가 나기 전 애착 형성과 안전한 적응을 위해 결연된 입양가정에서 위탁의 형태로 함께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관련 법 규정이 없지만 해외에서는 다수의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으며, 파양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아이의 적응을 돕는 제도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해명대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사전위탁보호 제도를 의미한 것이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 전후 맥락이 어땠는지를 살펴야 한다. 

“입양의 경우에도 사전에 입양하는 부모들이 충분히 입양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하는 상황들을 보다 잘 조사하고, 또 초기에는 여러 차례 입양가정을 방문함으로써 아이가 잘 적응을 하고 있는지, 또 입양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일정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는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아동을 바꾼다든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입양 자체는 또 위축시키지 않고 활성화해 나가면서 입양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대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 보도에서는 ‘입양 취소’, ‘입양아동 변경’과 같은 표현이 부각됐지만, 실제 발언을 보면 입양부모에 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함께 제시됐다. 물론 문 대통령이 입양 전 위탁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일정기간”을 두고 입양부모의 자격과 아이의 적응 상태를 살펴야 한다는 주장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라고 볼 수는 없다.

 

2019년 기준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의 관계.(단위: 건, %) 자료=보건복지부
2019년 전체 아동학대 사례 3만45건 중 가해자가 부모인 아동학대 사례 현황.(단위: 건, %) 자료=보건복지부

◇ 입양 전 위탁, 아동학대 막을 수 있나? (△)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입양이 아동학대의 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입양제도 개선을 아동학대 예방책으로 지목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 또한 대부분의 사전위탁가정은 입양 취소나 입양아동 변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며 청와대의 해명은 선량한 입양부모에 대한 모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전국입양가족연대는 1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가 아동학대 사건의 대책으로 사전위탁보호제를 제시한 것에 대해 “관련 제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당사자를 고려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아동학대의 주된 원인은 입양이 아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아동학대 가해자 중 친부모의 비율은 72.3%였던 반면, 양부모의 비율은 0.3%에 불과했다. 해당 수치를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입양제도 개선이 아동학대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다만 ‘16개월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이 입양부모에 대한 사전 검증 및 사후 관리 부실 등 입양제도의 문제에서 기인한 부분이 있는 만큼, 입양제도 개선이 아동학대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 중 하나라고 볼 수는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해당 발언 전 아동보호시설 및 전담공무원 확충, 아동학대 감시 체계 개선 등의 대책을 언급하기도 했다.

◇ 文 발언, 지나치게 왜곡됐다? (×)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이 비판받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사전위탁보호제의 필요성과 잠재적 부작용을 동시에 강조하는 모순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 중 “입양부모가 마음이 변하면 일정기간 내 입양을 취소하거나 입양아동을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는 부분은 사전위탁보호제의 도입를 반대하는 이들이 제도의 허점이라고 강조했던 내용이다. 이들은 입양부모가 자기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전위탁보호제를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 2005년 민법 개정을 통한 친양자 제도 도입 당시 ‘시험양육’이라는 이름으로 사전위탁보호제를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민법개정안 공청회에서 법무부는 해당 제도가 “아동을 시험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고, 결국 개정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해외 사례를 봐도 입양 전 위탁제도는 입양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입양아동의 안전과 적응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임이 명확하다. 독일은 “중단된 위탁이 좌초된 입양보다 낫다”는 기조 하에 평균 1년간의 시험양육기간을 두고 있지만, 이는 아이의 복리가 잘 보호될 것인지를 면밀하게 판단하기 위한 조치일 뿐 입양부모를 배려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게다가 입양부모가 위탁보호를 하는 시점에서 이미 입양아동에 대한 부양의무가 발생하는 만큼,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골라보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양육에 나서기도 어렵다. 

홍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콩은 입양 전 6개월 시험양육기간을 의무적으로 거치게 하는데, 입양부모는 이 기간 동안 홍콩 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없고, 정부의 허가 없이 아동과 분리될 수도 없다. 또한 정기적인 면담과 방문을 통해 양육에 적합한 가정이라는 점을 소명해야 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입양 전 위탁은 법제화되지 않은 상태인 데다 입양절차 전반을 민간기관이 맡고 있다. 이는 입양부모가 위탁기간 도중 특별한 사유 없이 아이를 돌려보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아직 법원이 입양을 허가하기 전이기 때문에,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돌려보내도 파양 관련 기록이 남지 않는다. 국가가 직접 입양절차 전반을 관리·감독하고, 위탁기간 동안 입양부모가 입양아동을 보호할 책임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사전위탁보호제는 입양아동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악법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입양부모와 입양아동의 결연은 한 번에 이루어지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 입양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입양아동의 상처를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제도는 ‘불가피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양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설령 선의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잘못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입양특례법 개정안 중 사전위탁보호제를 포함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문 대통령은 발언의 진의에 대해 해명하기 전에, 발언에 담긴 모순에 대해 사과하고 구체적인 입법 노력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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