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장판사 관련 기사의 핵심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장판사 관련 기사의 핵심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헌정 사상 최초의 사법농단 판사 탄핵 이슈가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진실 공방으로 번졌다. 김 대법원장이 탄핵을 언급하며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법조계를 넘어 여야 간의 정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앞서 국회는 지난 4일 역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과거 가토 타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세월호 7시간’ 사설 관련 재판,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재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의 체포치상 사건에 대한 재판 등 3개 사건의 재판에 개입하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날 언론의 관심을 모은 것은 최초의 법관 탄핵이 아니라 임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록이었다. 전날 대법원이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4월 탄핵을 이유로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문을 발표하자, 곧바로 당시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을 공개하며 반박에 나선 것. 

김 대법원장이 곧바로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고 사과하자 탄핵 이슈는 곧바로 김 대법원장의 거취 논란으로 옮겨갔다. 야당은 사법부의 수장이 여당의 눈치를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반면, 여당은 사법농단 이슈에 거짓해명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 법관탄핵 관련 키워드, '사법농단' 보다 '거짓말' 자주 등장

대법원의 입장문이 나온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빅카인즈에서 ‘김명수’와 ‘임성근’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지난 일주일간 무려 1783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 중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임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공개한 4일 가장 많은 567건이 집중됐다. 이후 주말을 맞아 기사량이 줄어들었지만, 월요일(8일)과 화요일(9일) 각각 247건, 134건의 기사가 나오며 식지 않은 언론의 관심을 입증했다.

관련 기사에 빈번하게 등장한 핵심 키워드로는 대법원장, 탄핵소추안, 사법부 등이 꼽혔다. 하지만 직책, 기관명 등 이번 이유와 관련된 기본적인 키워드를 제외하면 가장 자주 등장한 키워드는 ‘녹취록’과 ‘거짓말’이었다. 법관 탄핵 이슈가 임 부장판사의 녹취록 공개로 인해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이슈로 완전히 반전됐다는 것. 즉, 언론이 해당 사건을 더 이상 과거 사법농단 이슈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김 대법원장의 거취까지 걸린 새로운 이슈로 보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사법농단’은 주요 연관 키워드 목록 중 ‘거짓 해명’과 ‘사표 수리’에 이어 8위에 랭크됐다. 검색 범위를 주말 이후(8~9일)로 한정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8~9일 보도된 관련 기사 435건의 핵심 연관 키워드 순위에는 아예 ‘사법농단’이나 ‘탄핵’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거짓말’과 ‘거짓 해명’은 ‘대법원장’과 ‘사법부’ 다음으로 3~4위로 랭크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성근 부장판사 관련 기사량 추이. 자료=빅카인즈
2월 3~9일 김명수 대법원장, 임성근 부장판사 관련 기사량 추이. 자료=빅카인즈

◇ "탄핵이 문제" vs "탄핵을 미뤄서 문제" 엇갈린 언론 보도

한편 이번 논란을 조명하는 언론의 시각은 둘로 나뉜다. 일부 언론은 대법원장의 정무적 판단을 비난하는 한편, 정부·여당이 탄핵 이슈를 통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언론은 사법농단 청산을 미룬 결과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다며 다른 방향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탄핵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과, 탄핵을 미뤄서 문제라는 비판이 양립하고 있다는 것.

특히 조선일보는 지난 3~9일 국내 매체 중 가장 많은 7건의 사설을 내보내며 여당과 사법부를 향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조선일보는 5일 사설에서 “임 판사는 이번 달에 퇴임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사를 그 전에 끝내긴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을 1년이 지나서야 갑자기 밀어붙인 것”이라며 이번 탄핵을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민주당은 작년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여론 조작으로 유죄판결을 받자 ‘판사 탄핵’을 본격적으로 외쳤다.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중지, 조국 전 장관 아내 정경심씨 유죄판결, 최강욱 의원직 상실형 등이 이어지자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이라며 “앞으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과 청와대의 울산 선거 공작 사건 등 문재인 정권의 불법과 관련한 재판이 예정돼 있다. 판사 탄핵을 통해 자신들의 불법에 대해 ‘무죄’를 주라고 사법부를 겁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또한 9일 사설에서 “무죄 받은 판사를 허겁지겁 탄핵했던 거대 여당은 이번엔 사실상 위증한 대법원장의 엄호와 비호에 총력전이다”라며 “우리 쪽에 편향된 대법원장을 막무가내로 감싸 전체 법원과 판사를 길들이겠다는 뜻”이라고 여당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이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판사를 가려내자는 게 법관 탄핵 제도”라며 “법을 만드는 국회와 법을 수호하는 사법부에서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과 대법원은 이러고도 국민에게 법을 지키고 판결에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겨레는 5일 사설에서 “김 대법원장의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빌미로 이번 탄핵소추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 또한 용납되어선 안 된다”며 “‘사법농단 법관 보호’를 ‘사법부 독립’으로 둔갑시키는 것이야말로 법관은 아무런 견제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특권의식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겨레는 “사법부가 사법농단에 대한 청산 의지를 보이지 않다 보니 국회가 나서 사법부 견제 수단인 법관 탄핵을 꺼내 들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김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며 “김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원 구성원 모두가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겸허한 성찰에 나서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경향신문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공사 분별에 실패하고 사법농단 청산 작업에 미온적이었던 김 대법원장에게 근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7일 사설에서 “(사법농단 판사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자) 사법농단 세력들이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했고, 이것이 국회로 하여금 헌법을 위반한 비리 법관을 탄핵소추하는 상황에 이르게 했다”며 “김 대법원장은 취임 3년6개월이 다 되도록 왜 사법농단 청산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는지도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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