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연 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입법·행정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됐고,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에는 청와대 및 관계부처가 직접 나서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스로드>는 지난 3년간 20만 이상의 추천을 받은 여러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해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양육비 대지급제, OECD 주요국 대부분 도입

지난 2018년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미혼부가 지급하는 자녀 양육비 부족과 자녀 양육에 대한 무관심은 미혼모를 경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언제까지 무책임한 아이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만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 안에서 고통스러워야 하나”라며 덴마크에서 시행 중인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이 언급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은 양육비 대지급제를 의미한다.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국가가 양육비를 우선 지급한 다음 양육비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다. 양육비 대지급제는 한부모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예방하고 안정적인 양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조치로 꼽힌다. 

실제 OECD 주요국들은 대부분 다양한 방식으로 양육비 대지급제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양육비 이행 관리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에스토니아·독일·헝가리·이탈리아·스웨덴 등은 국가가 직접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다. 지방정부(체코·덴마크·핀란드)나 정부기관(프랑스·슬로바키아·벨기에)을 통해 양육비를 지급하는 곳도 있으며, 일부 폴란드·포르투갈 등에서는 아예 양육비를 위한 특별 재정을 운영 중이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한 이 청원은 한 달간 21만7054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답변에 나선 엄규숙 전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현 경희사이버대 부총장)은 “여성가족부는 지난 2월 대지급제를 포함한 ‘양육비 이행지원제도 실효성 확보 방안’ 연구용역을 시작했다”며 “오는 11월 결과가 나오면 외국의 대지급제와 우리나라 양육비 지원 제도 등을 종합 분석해, 실효성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OECD 주요국 양육비 대지급 재원 및 지급액. 자료=국회입법조사처
OECD 주요국 양육비 대지급 재원 및 지급액. 자료=국회입법조사처

◇ 재정부담, 행정비용., 양육비 대지급제 논의 쟁점은?

청원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양육비 대지급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청원이 제기된 지 3년, 문 대통령 당선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양육비 대지급제는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것은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로 양육비를 받지 못한 채권자에게 국가가 자녀 1인당 20만원을 최대 1년간 지급한다. 이 마저도 지난 2018년 9개월에서 3개월 연장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양육비 대지급제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규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양육비 대지급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계류된 상태다.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이 지연되는 이유는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 때문이다. 엄 전 비서관은 2018년 청원에 답하면서 “사실 ‘양육비 대지급제’는 지난 2004년 이후 꾸준히 관련 법이 발의됐지만 재정부담 때문에 한 번도 통과되지 못했다”며 “독일의 경우에도 실제로 정부가 받아내는 돈은 2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국가 예산으로 메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가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규민 의원이 제출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양육비 대지급 금액을 현재 한시적 양육비 지원금액인 20만원으로 가정할 때 향후 5년간 추가재정소요는 총 5773억원(연평균 1155억원) 정도다. 게다가 이는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해 계산한 결과로, 정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해도 추가적인 부담은 분명히 존재한다. 게다가 전담 인력 확보 및 관련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노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점진적인 도입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9년 2월 발표한 ‘양육비 이행지원 강화방안’ 보고서에서 “저소득 한부모가족을 위한 지원액이 현실화되고 지원의 사각지대 해소가 직접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급여들 간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여 장단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어 “양육비 대지급 수당을 급하게 도입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는 저소득 한부모가족을 위한 공공부조 체계를 현실화하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보다 장기적인 과제로 아동수당의 안정적 정착과 함께 점진적으로 양육비 대지급 수당을 완성된 형태로 도입하는 것이 적절한 정책적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한부모 긴급지원 제도. 사진=여성가족부 홈페이지 갈무리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 사진=여성가족부 홈페이지 갈무리

◇ 시행 앞둔 양육비 이행 법안, 내용은

양육비 대지급제 논의는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러있지만 양육비 이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조치들은 시행을 앞두고 있다. 특히 양육비 이행법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면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졌다. 법안에 따르면 가정법원에서 감치 명령을 받은 양육비 채무자가 1년 내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또한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채권자가 신청하면 채무자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다.

또한 지난달 19일 양육비 이행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양육비 채무자의 재산 규모를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이로 인해 여가부는 기존과 달리 양육비 채무자의 국세·지방세뿐만 아니라 소득세, 재산세 및 토지·건물 관련 세금 관련 자료까지 구체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부모가족을 돕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도입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양육비 대지급제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한부모가족이 경제적 불안정을 느끼지 않고 아동을 양육하기는 어렵다. 많은 한부모가족의 기대가 걸려 있는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 공약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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