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자료=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최근 국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가 연이어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빵 애호가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1위인 파리바게뜨는 오늘(19일)부터 660개 제품 중 95개 품목의 권장 소비자가격을 평균 5.6% 인상한다. 2위인 뚜레쥬르 또한 지난달 22일 90여종의 제품 가격을 약 9% 인상한다고 가맹점에 공지했다. 

소비자들은 국내 빵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며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의 인상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운영하는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가 지난 2019년 발표한 ‘전 세계 생활비’(Worldwide Cost of Living 2019)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빵 1kg을 사는데 드는 비용은 15.59달러였다. 이는 생활비가 가장 높은 상위 10개 도시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것으로, 2위인 뉴욕(8.33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다. 

2020년 보고서에서 빵값이 가장 비싼 도시는 뉴욕이었지만, 이는 서울이 생활비 순위에서 10위 아래로 내려가면서 비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2020년 보고서에 나온 뉴욕의 빵 1kg당 가격은 8.62달러로 10달러를 넘는 도시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밀 가격 추이. 자료=한국농촌경제연구원
1년간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밀 가격 추이. 자료=한국농촌경제연구원

◇ 한국, 빵값 세계 1위 이유는?

국내 빵 가격이 유독 비싼 이유는 원재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식용 밀 수요량은 연간 215만톤(최근 5개년 평균) 수준이지만, 국내 생산량은 3만톤에 불과하다. 자급률이 1%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밀을 포함한 곡물자급률 또한 2019년 기준 21%로 2011년(29.6%)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빵 가격은 원재료 가격의 변동에 더욱 민감한 편이다. 특히 최근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도 비용 압박을 받게 됐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세계곡물 가격동향’에 따르면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17일 거래된 밀 1톤의 가격은 237달러로 지난해 최저가(6월 29일, 174달러) 대비 36.2%나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차질, 남미 등 주요 밀 수출국의 작황 부진 등 다양한 악재가 겹친 결과다.

게다가 국내 자급률이 100%에 가까운 달걀 또한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여파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정부가 달걀 수입에 나서고 살처분 기준까지 완화하는 등 각종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달걀 가격 오름세는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제빵업계 입장에서도 가격 인상에 대한 비판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자료=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
유통채널별 빵 매출 비교. 자료=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

◇ 비싼 빵값, 원재료 탓만 할 수 없는 이유

하지만 빵 가격이 비싼 이유를 단순히 원재료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밀 자급률이 12% 수준인 일본의 경우 빵 1kg당 가격이 5.63달러(오사카, 2020년 기준) 정도다. 일본이 한국보다 자급률이 높다고 해도 여전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빵 가격이 세 배나 더 비싼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국내 빵 가격이 유독 높은 또 다른 이유는 독특한 시장 구조 때문이다. 국내 빵류 시장은 다른 나라와 달리 소매유통채널을 통해 판매되는 양산빵보다 제과점에서 판매되는 빵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실제 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제과점업 매출은 5조9388억원인 반면 소매유통채널 매출은 4251억원으로 제과점  시장의 7%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빵의 가격이 양산빵에 비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과점에 치우친 시장구조가 빵값 세계 1위를 달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제조사별 빵 매출액. 자료=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
제조사별 빵 매출액. 자료=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

◇ 특정 기업에 치우친 빵 시장, 가격 경쟁은?

게다가 빵 시장이 사실상 독점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국내 빵 시장은 사실상 SPC그룹이 장악하고 있다. 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대형할인마트, 편의점, 독립슈퍼 등을 통해 판매된 빵 매출액은 총 2047억원이었으며, 이 중 75.6%인 1549억원이 삼립의 매출이었다. 양산빵 시장의 4분의 3을 SPC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독점화는 가격의 정상화를 어렵게 만든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SPC그룹이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며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총수 및 경영진을 형사고발 조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SPC그룹은 계열사인 파리크라상 등 3개 회사가 다른 계열사가 만든 빵 재료를 납품받는 과정에 SPC삼립을 끼워 넣어 일종의 ‘통행세’를 챙기게 했다. 2013년부터 7년간 SPC삼립을 통한 거래액만 380억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처럼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면 빵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SPC그룹이 최근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만큼, 통행세 챙기기 혐의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독점구조가 빵 시장의 가격경쟁을 저해하는 요소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1인 가구의 증가와 식생활의 변화로 빵 소비량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KB경영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국내 베이커리 시장 동향과 소비트랜드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빵 섭취량은 2012년 18.2g에서 2018년 21.3g으로 증가했으며 85g단팥빵 1개를 기준으로 연간 소비량은 78개에서 91개로 증가했다. 빵이 점차 한국인의 식탁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넓어지고 있는 만큼, 합리적인 가격 형성을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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