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해외 사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해외 사례는?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2.26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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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5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청원 내용.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2018년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청원 내용.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개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 중 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앞서 헌재는 25일 A씨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한 형법 제307조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를 5대4 의견으로 기각했다. 위헌 결정은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헌재는 “오늘날 사실 적시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게 되었다”며 “심판대상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개인의 명예, 즉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헌재는 이어 “이러한 금지의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그러한 명예훼손적 표현행위에 대해 상당한 억지효과를 가질 것이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美 英 등 다수 국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미투 운동 이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첨예한 사회적 논쟁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실명을 밝히고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려 해도, 고소를 당할 것이 두려워 침묵을 지켜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검찰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서지현 검사 또한 당시 한 방송에서 “명예훼손 피소를 각오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해외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경우가 드물다.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018년 발간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 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호주·유럽 등 28개국을 조사한 결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가 16개로 인정하는 국가보다 더 많았다는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실제 영국은 지난 2010년 “오늘날처럼 표현의 자유가 권리가 아니었던 지나간 시대의 이해할 수없는 범죄"라며 명예훼손죄를 폐지했다. 미국 또한 1964년 ‘개리슨 대 루이지애나’ 사건에서 명예훼손 처벌 규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뒤 대부분의 주에서 관련 조항을 폐지했다. 

물론 선진국 중에서도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프랑스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독일도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 대부분 처벌을 받지 않으며, 명예의 침해 정도가 큰 공인의 경우에만 사실을 말했더라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면 처벌하지 않아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엔에서도 우리나라에 지난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 헌재가 합헌 결정 내린 이유는?

이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 흐름인데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경우 개인의 인격권을 보장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헌재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이나 위하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워, 입법목적을 동일하게 달성하면서도 덜 침익적인 수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제310조 또한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이유 중 하나다. 헌재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이러한 형법 제310조의 적용범위를 넓게 해석함으로써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공적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어 “만약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고려하여 심판대상조항(형법 307조)을 전부 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외적 명예가 침해되는 것을 방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떠한 사실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며 “단순히 타인의 명예가 허명(虛名)임을 드러내기 위해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은 자유로운 논쟁과 의견의 경합을 통해 민주적 의사형성에 기여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상균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안한 형법 307조 개정안. 자료=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배상균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안한 명예훼손죄 관련 법령 개선안. 자료=한국형사정책연구원

◇ ‘7대2’에서 ‘5대4’로, 법조계 시각 변화

다만 헌재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와는 조금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16년 정보통신망을 통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대해 7대2로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5대4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실제 이날 반대의견을 낸 4명은 “사실적시 표현행위가 타인에 대한 사적 제재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행위를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포함시키면 표현의 자유는 형해화될 수 있다”며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해당 조항을 폐지하기 어렵다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25일 논평을 내고 “해당 조항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진실한 사실이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을 공개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필요성”이라며 “국회가 헌재의 유력한 위헌 의견과 국제사회의 권고를 반영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공익적 목적없이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공개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보완 입법을 통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폐해를 시정해나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반면, 배상균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8년 발표한 논문 ‘사실적시 명예훼손행위의 규제 문제와 개선방안에 관한 검토’에서 “사생활 등 특정사안을 배제하도록 규정하는 것보다는 공인 개념 등에 기초하여 위법성 조각사유를 확대하는 것이 보다 실효적”이라며 공인·공직자에 대한 사실적시에 대해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할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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