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 앞에서 국민연금의 공익이사 추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 앞에서 국민연금의 공익이사 추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금융권에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 바람이 불면서,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도 ESG 투자 확대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국제 컨퍼런스에서 “2022년까지 (ESG를 고려한) 책임투자 적용 자산군 규모가 기금 전체 자산에서 약 50%로 확대될 예정”이라며 “2021년부터 ESG 통합전략을 국외 주식과 국내 채권 자산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이사장의 발언은 그동안 국내 연기금 및 금융투자회사들의 투자성향을 고려할 때 꽤나 인상적인 발언이다. 실제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국내 3대 연기금(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의 ESG 투자 규모는 약 27조원으로 전년 대비 세 배 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이 국민연금에 의한 것인 데다, 3대 연기금의 전체 투자액 중 ESG 비중도 약 4%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해외 주요국의 ESG 투자 비중이 18%(일본)~63%(호주, 뉴질랜드 등) 수준으로 높은 점을 고려하면 국내 ESG 투자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올해까지 ESG 투자 비중을 50%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제 금융권에서 ESG는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국민연금의 ESG 투자 선언은 단순히 운용자산 비중을 늘리겠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투자대상에 대한 ESG 평가기준을 강화하고, 관련 리스크가 높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24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올해 상반기 중 환경·사회 분야 중점관리사안을 추가하는 방안과 투자제한·배제전략 도입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이미 지난해 연구용역을 통해 해외사례 및 국민연금 ESG 평가모형을 바탕으로 ‘기후변화’와 ‘산업재해’ 등 두 가지 요소를 중점관리사안 후보로 선정했다. 만약 두 요소가 국민연금의 ESG 평가 기준으로 공식 추가되면, 향후 산재 사고가 많거나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은 국민연금의 투자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 

실제 주요 글로벌 연기금들은 이미 이와 같은 ESG 평가기준을 세우고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실제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핵무기), 중국 통신업체 ZTE(부패), 월마트(인권), 포스코(환경오염) 등을 ESG 기준에 따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관리(NBIM)의 니콜라이 탕겐 대표는 지난해 말 언론 인터뷰에서 “리스크의 현명한 배분을 통한 수익률 제고를 위해 ESG를 근거로 투자지분을 감축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료=한국투자증권
자료=한국투자증권

◇ 시민단체, 국민연금에 '적극적 주주제안'과 '석탄투자 감축' 촉구

국민연금의 ESG 투자 확대 및 평가기준 강화 선언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아직 시민단체의 반응은 미지근한 모양새다. 적극적인 주주제안을 통해 투자대상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에 국민연금이 응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금융정의연대, 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1월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SG 문제기업 개선을 위해 국민연금이 공익이사를 추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당시 2020년부터 사외이사 후보추천 및 주주제안을 기금위 의결에 따라 시행하기로 했으나 수많은 지배구조 문제기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단한번도 제대로 된 사외이사 후보 명단을 만들지도, 추천을 하지도 않았다”며 “2021년 주주총회에서는 ESG 문제기업의 이사회 등 개선을 위해 기금위가 결단을 내려 공익이사 주주제안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달 네 차례에 걸쳐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를 열고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사외이사를 추천할 것을 검토했으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민연금이 지난 2019년 말 마련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ESG 문제기업에 사외이사를 추천하려면 약 1년간의 비공개 대화 및 중점관리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 이 절차를 건너뛰고 주주제안을 한다고 해도 주총 6주 전까지 제안서를 대상 기업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 전에 대상 기업 이사회 등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후보 추천을 위해 기준 검토 및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연금이 ESG 투자확대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석탄 관련 사업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가 전 세계 금융기관을 상대로 석탄 관련 사업 투자 규모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투자 규모는 채권과 주식을 합해 총 114억2300만 달러(약 12조65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 세계 개별 투자기관 중 11위에 해당하는 순위다.

윤세종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석탄사업은 이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탈석탄 투자는 환경 문제라기보다는 금융의 건전성 관리 문제”라고 지적하며 “우리나라 전체 석탄투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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