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매입한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 부지. 사진=호주 환경단체 '락더게이트'(Lock the Gate)
한국전력공사가 매입한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 부지. 사진=호주 환경단체 '락더게이트'(Lock the Gate)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수천억원을 투입한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 개발사업이 호주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며 사실상 좌초됐다. 한전이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항소를 준비하는 가운데, 현지 주민들이 사업 부지를 매입하겠다고 나서 관심이 집중된다.

앞서 한전은 지난 2010년 다국적 광산기업 앵글로아메리칸으로부터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지분 100% 을 약 4억 호주달러(약 3500억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석탄광산 개발이 초래할 각종 환경문제로 인해 지역사회와 환경단체의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지난 2019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독립계획위원회(IPC)가 사업 승인을 거부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한전은 IPC의 결정에 반발해 지난해 6월 NSW주 토지환경법원에 행정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월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광산 개발을 계속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전이 입은 손실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전은 바이롱 광산 투자금 5135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그동안 투입된 개발비용 등을 더하면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한전이 해외에 투자했다가 입은 손실의 대부분은 석탄 부문에서 발생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이 지난 2011~2020년 상반기까지 약 10년간 해외 자원·발전사업에 투자한 4조7830억원 중 1조2184억원이 손상차손 처리됐으며, 이중 51.3%에 해당하는 6248억원의 손실이 석탄 부문에서 발생했다. 이 기간 한전이 해외 법인에서 받은 배당금(1조265억원)을 고려해도 1919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동안 입은 손실 때문인지 한전은 아직 석탄광산 개발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전은 이미 항소의향서를 호주 법원에 제출했으며, 이달 중 소장을 다시 접수할 방침이다. 

 

한국전력공사에 바이롱 광산 부지 매입을 제안한 호주 환경단체 명단. 사진=기후솔루션
한국전력공사에 바이롱 광산 부지 매입을 제안한 호주 환경단체 명단. 사진=기후솔루션

◇ 호주 환경단체, “한전 광산부지 매입해 재생농업단지 개발”

이런 상황에서 호주 현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한전에 바이롱 석탄광산 개발사업을 정리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호주 환경단체 락더게이트는 15일 한전 이사회에 “석탄사업 탐사권을 정리하고, 해당 부지를 탄소순환농업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매각하는 방안을 제안드린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현재 한전이 보유한 바이롱 광산 부지(건물 포함) 가격은 약 407억원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토지 매입 의사를 밝힌 이들은 호주의 재생농업 투자자와 현지 주민들이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탄소를 토양과 식생에 흡수시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재생 농업(Regenerative Farming) 단지로 전환해 바이롱 계곡의 생태계뿐 아니라 소멸 위기에 빠진 지역사회를 되살리겠다는 계획이다. 

락더게이트는 한전이 바이롱 석탄광산 개발사업을 계속 추진할 경우 심각한 환경적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락더게이트에 따르면 바이롱 석탄광산이 개발될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억80만톤, 스코프3(Scope3: 물류, 협력사 등 외부 배출) 배출량은 1억9740만톤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한국의 석탄발전 의존도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임을 고려할 때 생산한 석탄이 모두 소비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한전은 2046년까지 바이롱 광산에서 연간 650만톤의 석탄을 생산할 계획이지만 락더게이트는 “한국의 기후변화 목표 달성을 위해 석탄 사용량의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2046년까지 연간 650만톤을 생산하는 석탄사업이 허용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설령 2심 재판에서 승소한다고 해도 사업이 바로 재추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락더게이트는 “(한전이) 승소하더라도 결국 해당 사건은 원래 의사결정권자에게 환송될 것이며 또 다른 결정을 내려지기까지 긴 법적 절차를 거쳐야한다”며 “설사 다른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해당 사업 진행을 위해서는 한 번 더 연방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한다”고 지적했다. 락더게이트는 이러한 법적 절차를 고려할 때 승소 후에도 3~4년 이상 사업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9년 한국전력공사의 해외 사업 전력 구성. 자료=IEEFA
2019년 한국전력공사의 해외 사업 전력 구성. 자료=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 IEEFA, "한전, 석탄발전 미련에 돈 쏟아붓는 중"

한전의 해와 화석연료 투자에 우려가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 지난해 2월 네덜란드연기금(APG)은 “세계 금융 시장은 석탄발전 부문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한전 최고 경영자와 이사진은 그들의 결정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한전에 대한 투자 철회를 발표한 바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또한 지난해 5월 한전에 해외 석탄발전 투자에 대한 포괄적 정보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한 바 있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도 지난해 6월 ‘한국전력 이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한전의 해외 화석연료 투자에 우려를 표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멜리사 브라운(Melissa Brown) 아시아 에너지금융연구소 디렉터는 “한전은 청정에너지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런 방향과 상충하는 투자 결정을 내리고 있다.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는 습관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한전이 계획 중인, 그리고 운영 중인 해외 프로젝트 전력 믹스의 51%가 석탄”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운은 바이롱 광산개발에 대해서도 “바이롱에 대한 대손충당금은 2019년 한전의 전체 순손실 가운데 27.3%를 차지한다. 한전은 2020 년에도 바이롱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에너지 시장 환경에서 가망 없는 계획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항소심 법정에서 호주 정부에 맞서 돈을 쏟아붓는 중”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비록 바이롱 석탄광산 개발사업의 매몰비용이 작지 않지만, 이 같은 분위기를 고려하면 한전의 항소가 합리적인 결정이 아닐 수도 있다. 소송비용과 현지 주민들의 반발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의 비판과 투자 철회도 함께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락더게이트는 “한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사업에 추가로 거액을 투입하여 손실 규모를 키울 것인지, 아니면 해당 부지에서 철수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한 탄소감축 사업을 위해 부지를 매각할지 결정해야 할 때”라며 “탄소순환농업을 위해 해당 토지를 매각한다면, 한전 입장에서도 자금 회수 효과가 있고, 한국의 기후 변화 정책과도 일치하여 투자자들의 ESG 우려도 크게 불식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전이 현지 주민과 환경단체의 제안에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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