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통계청
자료=통계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의 수가 채 한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 인구를 현상유지하는데 필요한 인구대체출산율이 선진국의 경우 2.1명 수준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인구문제는 커다란 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OECD 유일의 0명대 출산율을 기록하며 ‘꼴찌’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 꼽히는 것은 ‘경제적 요인’이다. 결혼적령기의 청년층이 저소득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가장이 외벌이로 4인 가족을 먹여 살리는 과거의 가족모델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됐기 때문이다. 취업경쟁으로 사회 진출이 지연되면서 초혼연령이 높아지고 결혼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해답이다. 남성에게 결혼이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여성에게는 ‘하기 싫은 것’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독박가사’,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설명하는 표현들은 모두 불평등한 남성중심문화와 연결돼있다. 결혼과 출산의 무게를 불균형하게 짊어져야 하는 ‘문화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단순 감소를 넘어서 세계 최저 수준까지 곤두박질친 출산율을 설명할 수 없다. 

◇ 남아선호 강한 사회환경도 저출산에 영향 끼쳐

문화적 요인이 출산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미 통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28일 발표한 ‘세대효과와 출생성비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출생성비가 높은 시기에 태어난 여성일수록 결혼을 하거나 자녀가 있을 확률이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의 수로, 높을수록 남아가 많이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출생성비는 남아선호사상과 초음파검사의 보급으로 인한 성별선택(Sex selection)으로 인해 1980년 이후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출생성비가 116명을 기록할 정도로 높아졌으나 이후 하락해 2007년부터는 자연성비인 103~107명 범위 내에서 유지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출생성비가 높았던 ‘시기’에 태어난 여성은 자녀가 있을 확률이 낮았으며, 출생성비가 높은 ‘지역’에서 태어난 경우에는 출산뿐만 아니라 결혼했을 확률까지도 유의미하게 낮았다. 기혼자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출생성비와 자녀가 있을 확률 사이에 관계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출생성비→비혼→비출산의 연결고리가 성립되는 셈이다.

보고서는 통계적 분석을 통해 도출된 결과에 대해 “출생성비가 높은 지역에서 태어난 여성은 남성 중심적인 성 규범을 회피하기 위해 결혼 및 출산을 지연 또는 기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출생성비가 높다는 것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다는 뜻이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여성일수록 자신이 결혼·출산했을 때도 남성중심적인 성 규범을 감내해야 한다고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삶에 끼치는 영향.(단위: %) 자료=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녀가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2030 청년층의 인식. (단위: %) 자료=한국여성정책연구원

◇ 2030 여성, "독박가사·육아 부담 없다면 자녀 가질 것"

국회 보고서가 남성중심적 문화로 인해 여성의 결혼·출산 선호가 약화될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청년세대 생애전망에서의 남녀 차이,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 보고서는 이를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2019년 기준 전국 20~39세 635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2030 청년층 생애전망 인식조사’를 바탕으로 성별간 생애 전망과 결혼·출산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나 배우자보다 일과 개인생활을 더 중시하는 경향은 남녀 모두 동일했지만, 그 이유는 서로 달랐다. 여성의 경우 결혼과 출산이 원하는 직업과 취미활동,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하는 경향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과 출산이 원하는 직업을 유지하는데 불리하다는 의견이 여성의 경우 각각 50%, 67.3%였던 반면, 남성은 24.8%, 28.7%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는 현재 청년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이 ‘하지 못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장의 삶의 안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중대한 선택을 내릴 용기를 가진 여성은 많지 않다. 

 

자녀를 낳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한 2030 청년층의 인식. 자료=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녀를 낳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한 2030 청년층의 인식. 자료=한국여성정책연구원

 

그렇다면 여성의 비혼·비출산 경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 해당 조사에서는 참여자들에게 “자녀를 가지기 위한 전제조건”을 물었는데, 여성은 ①파트너의 적극적 양육 참여 ②파트너의 공평한 가사분담 ③파트너의 출산·육아휴직 가능성을 1~3순위로 꼽았다. 결혼과 출산 후 남성중심적인 성 규범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남성은 ①나보다 나은 삶을 물려 줄 수 있으면 ②내가 경제적으로 준비되면 ③내가 안정적인 일을 하면 등을 자녀를 가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꼽았다. 가정 내의 성별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높은 여성과 달리, 경제적 여유가 줄어들 것에 대한 우려가 더 높았다는 것. 

이는 경제적 요인에 집중한 정책이 저출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030 청년층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더라도 남성중심적 문화가 해체되지 않는다면 여성의 결혼·출산 기피 현상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때, 가정 내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변화가 없다면 여성들이 혼인을 기피하는 현상은 심화될 수 있다”며 “최근의 사회관념 변화를 반영하여,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가족의 개념을 확대 정의하고 새로운 가족 개념의 정착을 지원하는 등 저출산 극복을 위한 다각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정책연구원 또한 “‘회사인간’의 부양을 전제로 한 ‘독박육아’는 개인 단위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청년여성들이 택할 수 없는 선택지이며, 삶의 불안정성이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청년남성들도 선택하기 어려운 선택지”라며 “‘개인 단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중심적 생애’가 전 생애주기에 걸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며, 청년남성들의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목소리에 반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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