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포지티브 머니(Positive Money)
영국 비영리단체 포지티브 머니가 31일 G20 국가의 녹색금융 성적표를 발표했다. 한국(검은색 네모)은 D- 등급을 받아 미국과 함께 공동 13위에 머물렀다. 자료=포지티브 머니(Positive Money)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금융권에도 ‘녹색’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이 직접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은 아니지만,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양하면서 친환경 산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녹색금융 흐름에 동참하는 금융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또한 지난해 녹색금융 전문가 한 명을 금융안정연구팀 과장으로 영입한 것 외에는 기후위기와 관련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모양새다.

31일 영국의 비영리단체 ‘포지티브 머니(Positive Money)’가 주요 24개 연구기관 및 NGO와 함께 작성해 발표한 보고서 ‘녹색 중앙은행 평가표’에 따르면, G20 국가들의 중앙은행들 중 녹색금융 성적표에서 A는커녕 B를 받아든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지티브 머니는 각국 중앙은행의 녹색금융 성적을 ▲연구·홍보 ▲통화정책 ▲금융정책 ▲모범사례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녹색금융과 관련해 연구나 홍보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화석연료 등과 관련된 자산매입을 중단하고 친환경 분야에 대한 금리를 하향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의 성적은 130만점에 11점으로 D- 등급에 그쳤다. 연구·홍보분야에서는 ▲한국은행의 NGFS 가입 ▲금융위원회의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 추진 ▲금융감독원의 2020년 기후금융 관련 국제 컨퍼런스 개최 등이 인정을 받아 10점 만점에 10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금융정책(50점 만점)에서 1점을 받았을 뿐, 통화정책(50점 만점)과 모범사례(20점 만점)에서는 점수를 전혀 얻지 못했다. 금융정책에서 받은 1점은 금감원이 지난해 금융시스템의 기후리스크를 관리·감독하기 위한 스트레스테스트 모형 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 덕분이었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국가는 중국으로 총 50점을 기록해 C등급을 받았다. 중국은 인민은행의 NGFS 가입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감축시설에 대한 금리 하향, 지속불가능한 사업에 대한 대출 지양, 리스크매니지먼트에 기후위기 관련 요소 포함 등 다양한 조치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브라질이 총 45점으로 C- 등급을 받으며 2위를 차지했고, 그 뒤는 프랑스(43점, C-), 영국(38점, D+)등급, 유럽연합(33점 D+) 등의 순이었다. 일본은 19점(D-)으로 9위에 머물렀으며, 미국은 한국과 동률을 기록했다. 

G20 중 단 한 국가도 B 이상의 점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각국 중앙은행이 녹색금융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포지티브 머니는 보고서를 통해 “일부 중앙은행은 환경위험 평가 및 녹색투자 장려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환경에 유해한 산업에 대한 자금 조달을 억제하는 조치는 대부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화석연료 등 지속불가능한 사업과 관련된 대출 담보물 및 자산을 배제해고, 탄소집약적 산업에 대한 자본 적정성 기준을 높여 대출에 불이익을 주는 등 적극적으로 녹색금융에 걸맞은 통화·금융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지티브 머니의 경제학자로 이번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데이비드 바메스는 “중앙은행들이 여러 연설과 연구에서는 기후를 두드러지게 다룬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런 논의를 구체적인 정책 활동같이 실천에 옮기는 것은 실패해왔다”고 비판했다.

바메스는 이어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의 D-라는 점수는 통화 및 금융당국이 감독하고 있는 금융 시스템의 녹색화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대한민국의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국은행과 관련 기관은 화석연료 사업의 자금 조달을 제한하는 새로운 정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 또한 “G20 국가의 중앙은행들의 점수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의 금융당국이 받은 D-는 낙제점인 F를 겨우 면한 수준”이라며 “2030년부터 예정된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앞당겨야 하며, 올해 상반기 제정 예정인 녹색분류체계를 통해 명확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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