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사건 신상공개, 심의위 격상 후 비공개율 늘었다
강력사건 신상공개, 심의위 격상 후 비공개율 늘었다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4.06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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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일가족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태현(25). 사진=서울경찰청
노원구 일가족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태현(25). 사진=서울경찰청

경찰이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피의자는 25세의 남성 김태현이다. 김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5시 30분쯤 노원구 아파트를 찾아 온라인게임을 통해 알게 된 A씨와 어머니, 여동생을 연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A씨에게 만남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스토킹을 해왔다는 주변인의 증언을 확보하고 범행 동기를 수사하는 중이다. 

경찰은 5일 내부위원 3명,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김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경찰은 김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잔인한 범죄로 사회 불안을 일으켰고 신상 공개 관련 국민청원이 접수되는 등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임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찰은 이름과 나이를 공개한 뒤 검찰에 이동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노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처음부터 얼굴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문제는 김씨처럼 범죄의 잔인성이 심각하고 국민적 관심이 높다고 해서 모두 신상공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 김성민씨의 경우 여성계의 광범위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같은 해 평택에서 발생한 ‘의붓아들 살해사건’의 경우에도, 경찰은 범인인 친부와 계모의 신상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제주도 전남편 살해사건의 피의자 고유정씨처럼 얼굴 공개가 결정됐지만, 그 과정이 지연돼 동명이인이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다. 

◇ 특강법 기준 만족해도 비공개 왜?

일반적으로 피의자의 신상정보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공개되지 않지만, 지난 2010년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이 개정된 이후 일부 범죄자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특강법에는 피의자 신상공개를 위한 기준이 명확하게 규정돼있다.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기 위한 기준은 ①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②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③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④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 네 가지다. 다만 특강법은 조건을 모두 갖춘 경우라고 해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분명한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상공개가 항상 예상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대학 치안대학원 연구팀이 2019년 발표한 논문 ‘강력범죄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 - 판단기준 분석과 정책변동론의 적용’에 따르면, 네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킨 경우에도 피의자의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연구팀은 특강법 개정 이후 신상공개심의위원회가 열린 22건의 범죄를 대상으로 특강법 상 신상공개 기준의 충족 여부와 실제 공개 여부를 모두 분석했다. 이 중 네 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지만 신상이 비공개된 경우는 평택 의붓아들 살해사건(2016), 강남역 살인사건(2016), 삼성병원 의사 살해사건(2019) 등 세 건이었다. 평택건의 경우 피의자인 친부와 계모의 신상을 공개하면 피해자의 누나가 피해를 입을 것을 고려해 신상 비공개를 결정했으며, 강남역·삼성병원 사건은 피의자가 정신질환자인 점, 그리고 신상공개로 인한 범죄예방·재발방지 효과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고려됐다. 

결국 세 건 모두 특강법에 규정된 네 가지 기준 외에도 피해자 인권 및 피의자의 정신질환이라는 추가적인 요인이 고려된 셈이다. 두 가지 모두 고려할 만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법에 명시된 기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 2016년 이후 비공개율 증가, 알 권리와 배치돼

피의자 신상공개와 관련해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경찰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2010년 특강법 개정 이후 신상공개 여부가 문제시된 33건의 범죄 중 신상이 공개된 것은 22건(66.7%), 비공개된 것은 11건(33.3%)으로 공개된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신상공개위원회의 구성과 지위가 변경된 2016년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16년 이전에는 8건의 검토 결과 8건 모두 공개가 결정됐지만, 2016년에는 최초의 비공개 결정이 내려지는 등 8건 중 3건이 비공개로 결정됐다. 2017년 이후에는 17건중 8건이 비공개 결정돼 비공개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6년은 연속적으로 발생한 각종 강력범죄 사건으로 인해 신상공개 기준의 모호함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던 시기다. 당시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피의자의 정신질환을 이유로 신상이 공개되지 않아 여성계의 반발을 샀고, 신상을 공개했던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의 경우 피의자 주변인이 피해를 입어 비판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경찰은 신상공개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2016년부터 신상공개위원회를 경찰서에서 지방청 단위로 격상시키고 심사위원회에 외부위원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경찰위원 4명, 외부위원 3명에서 경찰 3명, 외부 4명으로 비중이 바뀌고 외부위원에 시민단체를 참여시키는 등 소폭의 변동이 추가됐다.

결국 신상공개 기준을 객관화하기 위해 심의위를 더 엄격하게 운영하다보니 오히려 비공개율이 높아지는 상황이 초래됐다는 것. 피해자의 인권, 피의자의 정신질환 등이 고려되기 시작한 것도 2016년 이후임을 고려하면, 경찰의 노력이 오히려 신상공개에 크게 기울어진 여론을 악화시키게 된 셈이다. 

◇ 신상공개 기준, 법·제도 개선으로 구체화해야

신상공개 여부를 더욱 객관적으로 결정하고자 경찰의 노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극단적으로 우세한 국내 상황에서 심의 과정을 강화하려는 경찰의 노력이 있는 그대로 평가받기는 어렵다. 실제 리얼미터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에 찬성하는 응답자 비율이 87.4%로 반대(8.9%)의 10배 가량 높았다. 2016년 이후 늘어난 비공개 사례가 이러한 여론의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의 반복을 막기 위해 기존 심의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장재성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2019년 발표한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법적 문제와 개선 방안’에서 일관성 있는 판단을 위하 각 지방청이 아닌 경찰청 인권위원회가 신상공개 심의를 전담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특강법을 개정해 실제로는 고려되고 있지만 법에는 명시되지 않은 기준을 구체적으로 추가하고, 신상공개의 정도나 방법 또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상공개 심의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진술 기회를 제공해 적법절차의 원리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가 많은 법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대다수가 이 제도를 지지하고 있는 실정에서 입법을 통해 이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 또한 현실성이 부족하다”며 “강력범죄 피의자의 인권도 소중한 가치이나 대다수 국민들의 알 권리와 범죄예방이라는 공익적 가치 역시 중요하며 양자의 조화로운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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