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한 전지구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탄소배출 ‘제로’(0)를 목표로 각종 환경정책을 추진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화력발전 중심의 전력구성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탄소중립시대의 국제질서 변화와 우리의 대응’ 보고서에서 “한국은 에너지 혁신을 위한 정부 정책의 뒷받침이 높은 수준인 반면, 탄소배출과 산업구조는 상대적으로 선진국 대비 부정적 여건”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하며 전지구적 탄소저감 흐름이 동참할 것을 선언한 바 있다. 정부는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 ▲탄소중립 인프라 강화 등 4가지 세부 목표를 달성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대비 24.4%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가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늦어 목표 달성을 위한 준비기간이 짧은 데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높은 석탄 발전 의존도로 인해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011년 28.2%에서 2019년 25.3%로 완만한 감소 추세에 있지만 비슷한 규모의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19.1%, 2019년)이나 일본(20.7%, 2018년)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고, OECD 평균(14.1%, 2018년)보다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제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부문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해 발표한 ‘2019 전 부문 에너지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광업·제조업), 상업·공공, 수송 등 전 부문의 에너지 사용량을 조사한 결과 제조업이 전체 에너지의 약 65.6%를 소비한 것으로 집계됐다. 제조업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또한 전 부문 배출량의 59.8%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국가경제의 제조업 의존도가 높을수록 탄소저감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산업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도 많이 소모되고, 업계의 반발도 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제조업에서 사용되는 전력을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공급함으로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석탄발전 의존도는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국전력의 1월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발전량은 55만1207GWh였으며 이 중 석탄발전은 19만6498GWh로 약 35.6%의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6.9%에 불과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석탄발전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로의 대체를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24%), 일본(32%), 독일(30%) 등의 선진국에 비하면 전력구성이 후진적인 상태다. 특히 미국의 경우, 최근 들어 석탄발전 비중이 급감하면서 지난 2019년 처음으로 석탄과 신재생에너지의 순위가 역전됐다.
다만 산업구조와 전력구성의 한계를 핑계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포기할 수는 없다. 탄소중립은 경제성장과 장기적으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온실가스 증가에 적극적인 대응이 없었을 경우 단기적으로는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성장잠재력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길게 보면 탄소중립 전환 비용이 부담되더라도 지금 당장 서두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
연구원은 이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중장기적 성장잠재력 확충과 지속 가능한 성장 계기 마련 ▲공존을 담보하는 산업 생태계 구축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기업 경영전략 수립 ▲국민의 부담과 삶의 질 개선 ▲에너지 거버넌스의 변화 ▲성공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 수립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대응 등 7대 핵심 과제를 제안했다.
연구원은 “국내 그린뉴딜 정책과 신산업 투자 등은 새로운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에너지 전환의 능동적 대응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며 “탄소중립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경제·사회 변화에 대해서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