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연 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입법·행정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됐고,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에는 청와대 및 관계부처가 직접 나서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스로드>는 지난 3년간 20만 이상의 추천을 받은 여러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해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공매도 폐지 여론 기폭제 돼

지난 2018년 발생한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는 해당 증권사에 대한 신뢰도뿐만 아니라 국내 주식시장의 투명성에 대한 불신을 촉발한 대형 사고였다. 당시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조합원 2018명에게 현금 배당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1주당 1000원을 1000주로 잘못 입력해 무려 28만10000주의 유령주식을 배당했다. 주문을 중단시키기 전까지 일부 직원이 501만주를 매도해 차익을 챙겼고, 대량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개인투자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의 특이한 점은 단순히 ‘허위주식’을 만들어낸 시스템 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매도’라는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실제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청원글은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와 공매도 문제를 엮어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청원인은 “회사에서 없는 주식을 배당하고 그 없는 주식이 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공매도는 대차 없이 주식도 없이 그냥 팔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며 “서민만 당하는 공매도 꼭 폐지 해 주시고 이번 계기로 증권사의 대대적인 조사와 조치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는 이론적으로 보면 공매도와는 무관한 사태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나중에 되갚는 것이지만, 삼성증권 사태는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전산 상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사태의 원인을 공매도에 돌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으며,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도 “공매도를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이 문제의 심각성과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삼성증권 사태가 국내에서는 불법인 ‘무차입 공매도’의 가능성을 실제로 구현한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주식을 빌려서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와 달리 무차입 공매도는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파는 것으로, 시장교란 가능성이 커 국내에서는 2000년 우풍금고 사건 이후 금지됐다.

하지만 삼성증권이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전산 시스템 상의 착오로 만들어내고 그 중 일부는 시장에 실제로 팔리면서, 증권가에 무차입 공매도가 만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불을 붙였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 또한 허위주식 사태를 막기 위한 시스템 개선안뿐만 아니라 공매도 제도 개선안까지 함께 제시해야 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2018년 5월 31일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및 공매도 폐지 관련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이 2018년 5월 31일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및 공매도 폐지 관련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허위주식 매매 시스템 개선, 불법 공매도 처벌도 강화

금융위원회는 2018년 5월 28일 ‘배당사고 재발방지 및 신뢰회복을 위한 주식 매매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개인투자자들의 비판에 답했다. 사흘 뒤 최 전 위원장의 청원 답변 또한 해당 방안을 요약한 것이었다.

개선방안은 ▲투자자별 매매가능 수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식잔고·매매수량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사고로 인한 매매주문을 즉시 취소할 수 있는 ‘비상 버튼 시스템’ 도입 ▲ 현금배당과 주식배당 시스템의 완전 분리 ▲공매도 제도 개선 등 크게 네 가지로 구성돼 있다. 

금융당국의 발표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약속했던 대책은 어느 정도나 실현됐을까? 우선 삼성증권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배당시스템의 경우 모든 증권사에서 개선이 완료됐다. 금감원은 사태 이후 국내 증권사에 현금·주식 배당 입력화면을 분리하고 착오입고에 대한 검증 시스템을 추가하는 등 27개 개선사항을 전달했고 2019년 34개 증권사 전체가 요구사항을 이행한 것을 확인했다.

공매도 관련 제도개선 약속도 일부 이행됐다. 지난 6일부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벅)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불법 공매도 적발 시 1년 이상의 징역 및 부당이득의 3~5배의 벌금이 부과되며, 공매도 세력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도 금지됐다. 또한 오는 20일부터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대주시스템도 시범 운영한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 불법 공매도 사전차단 약속은 사후적발로 변경

다만 ‘주식잔고·매매수량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사전에 불법 공매도를 차단하겠다는 약속은 사실상 철회됐다. 실시간으로 주식거래를 감시하는 시스템은 현실적으로 구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을 만나 (사전차단 시스템 구축) 가능성을 검토했다”며 “그분들이 ‘전산시스템 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나? 너무 많은 노역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공매도를 사전차단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거래 시점의 보유 주식이 공매도를 위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유상증자·배당주 등 차입 전 합법적으로 매도 가능한 주식의 거래를 잘못 제한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국내 금융전산망으로 전체 자금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사후적발 시스템을 구축해 불법 공매도를 신속하게 적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은 위원장은 “약속을 어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누가 몇 푼 번다고 감옥 갈 생각을 하겠느냐고 할 정도로 법 개정을 크게 했다. 불법 공매도 모니터링 시스템이 사전 차단은 아니지만 사후 적발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 이해를 해 달라”고 말했다.

5월 3일부터 코스피200 및 코스닥150 구성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재개된다. 지난 3년간 실천해온 금융당국의 시스템 개선안이 공매도 재개 이후 제대로 작동해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